[오늘도 터키] #15 젖병

순간의 기록, 여덟 번째.

by Sophie




늦게까지 일이 있던 날이었다.
열 시가 넘은 밤. 아야 소피아를 등 뒤에, 블루모스크를 눈 앞에 두고 트램을 타러 술탄 아흐멧 역으로 걷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보이던 그녀가 또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직 겨울 날씨가 채 가시지 않은 이스탄불의 3월.그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녀는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찬 돌바닥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곳에서 자리를 지키는 그녀와 매일 같은 곳을 지나는 나. 그 자리의 그녀는 어느새 일상의 풍경 그 일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모자를 뒤집어쓰고서 그녀를 지나치려 했다. 나눌 것이 마땅히 없는 날이라 괜히 눈을 마주치기가 불편해 빠르게 지나가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바로 그때 그들이 다가왔다.
부부인 듯한 남녀는 유모차 한 대를 끌고 길을 지나던 참이었다. 여자가 먼저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 남자도 멈춰 섰다. 여자는 남편에게 무어라 묻더니 허리를 숙이고 쭈그려 앉아 유모차 뒷 바구니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자가 꺼내 든 건 젖병 두 개였다.


그들의 유모차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위한 우유가 든 젖병. 그 젖병을 들고 여자는 바닥에 앉아있는 그녀와 아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에 젖병 두 개를 꼭 쥐어주고는 뭐라고 이야기했다. 날이 추우니 얼른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들어가라는 말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유모차를 끌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향하던 길로 사라졌다.

제 새끼만 귀하게 여기는 이들의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시대이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 곳곳에는 내 아이에게 물려줄 젖병을 다른 아이를 위해 선뜻 건네주는 '진짜' 부모들이 숨어 있다.

2015년 3월 3일 20시 39분

아직 쌀쌀했던 이스탄불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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