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사람, 네 번째.
퇴근길. 오늘도 역시나 트램 안은 만원이다. 이 시간에 앉아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 애초에 그나마 기대 설 수 있는 트램 벽 모서리를 공략하기로 했다. 무겁고 지친 몸을 기대고 나니 한결 트램 안의 후텁지근한 공기와 노동의 끝에 남은 사람들의 뒤섞인 체취도 견딜만했다.
유수프 파샤 Yusuf Paşa 역을 지날 때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주 크게, 아주 서럽게.
트램 안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여행 중인 듯 보이는 외국인 가족은 아이를 달랬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출 줄을 몰랐다. 어르면 어를수록 아이는 더 크게 악을 쓰며 울어댔다.
누군가는 울음의 진원지를 찾으려 고개를 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누군가는 지친듯한 미소와 함께 작은 한숨을 내쉬며 그냥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누구 하나 불평은 하지 않았다. 명백히 지친 퇴근길에 반가운 상황은 아니지마는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겠거니 하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가족 옆에 서 계시던 터키인 아주머니가 뒤로 몸을 돌려 섰다. 그리고서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아에게 건넸다. 빨간색 포장지에 싸인 사탕이었다.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는 거짓말 같이 울음을 그쳤다.
곧이어 아주머니는 다시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 아이의 엄마에게 건넸다. 물티슈였다.
아주머니는 손짓으로 입을 닦는 모습을 설명했다. 나중에 달콤한 사탕으로 끈적일 아이의 입을 닦아주라는 뜻 같았다. 나도 그 시절을 겪어봐서 알지요. 사탕을 까서 아이에게 쥐어주는 엄마를 보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젊은 엄마는 연신 "Thank you."를 반복하며 아주머니에게 인사했고, 아주머니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리곤 멀미가 나는지 다시 열차의 운행 방향으로 몸을 틀어 서셨다. 아이는 즐거웠고, 엄마는 안도했으며 트램 안에는 다시금 평화로운 고요가 찾아왔다. 아이의 울음이 떠난 자리에 사람들의 미소가 머물렀다.
터키살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 나라가 이런 친절함과 애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걸 곧바로 깨달았다. 트램에서도 길에서도 셀 수 없이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과 배려를 목격하곤 했다. 공짜 와이파이보다 친절이 흔한 나라라니. 아, 나는 아무래도 터키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15년 4월 10일.
이스탄불 트램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