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사람, 다섯 번째.
아아, 터키에 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라마단. 이미 중동 지역에 살아보았던 나로서 라마단은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터키에 오니 딱 한 가지 다른 것이 한 달 내도록 나를 괴롭힌다. 바로 새벽에 울리는 북소리다.
해가 떠있는 동안은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이슬람의 금식 기간 라마단.
강도 높은 한 달간의 금식을 통해 평소에 내가 당연하게 먹던 음식들에 대한 소중함과, 굶주리는 가난한 이웃의 마음을 헤아리라는 의미가 담긴 행위이지만 본디 인간이란 살기 위한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보니 라마단 기간에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예를 들어 일몰을 알려주는 아잔*이 울리자마자, 한참 전부터 음식을 다 준비해두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그 날의 첫끼인 '이프타르'**를 입 속에 욱여넣는 모습 같은 것들이다. 말이 '한 끼'이지, 이프타르는 사실 상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쉼 없이 먹는 대여섯 시간에 걸친 식사의 대장정이다. 밤이 깊도록 사람들은 늦게까지 먹고 먹고 또 먹는다. 그리고 자정이 훌쩍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해가 뜨기 몇 시간 전에 일어나 곧 있을 금식을 대비해 또다시 식사를 하는 것이다.
특히나 2015년의 라마단은 여름의 한가운데 오는 바람에 무려 16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식 기간으로 끔찍하게 힘든 해가 되어버렸다. 무슬림이 아닌 우리 또한 현지인들 앞에선 물 한 모금이라도 무심코 마시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고, 대낮이 되면 사람들은 축 늘어져 어디론가 숨어 들어가곤 했다.
올해처럼 유난히 긴 금식 시간을 지키기 위해선 새벽 동트기 전 끼니가 아주 중요한데, 정 많고 친절하다 못해 오지랖을 부리기 일쑤인 터키 사람들이니 어디 나만 먹을 수가 있나!
그리하여 누구 하나라도 자다가 일출 전 식사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새벽 3시 반쯤 북을 든 아저씨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북을 치신다. 그것도 한 집 한 집 불이 켜질 때까지.
모두가 고마워할 아저씨의 자원봉사. 하지만 무슬림이 아닌 우리 집은 좀 사정이 달랐다. 이 아저씨 때문에 룸메들 모두가 2주 가까이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집요하게 불이 켜질 때까지 울리는 북소리라니. 흑흑 아저씨 제발요.
터키에 놀러 온 대학 친구와 만나고 늦게 귀가하던 날. 새벽 두 시 반쯤 되었을까, 인적 드문 길을 바삐 걸어가는데 저 멀리 보이는 한 사람, 북치는 아저씨였다!
반가운 마음에 아저씨에게 냅다 달려갔다.
"아저씨 제가 저기 목욕탕 앞집에 사는데, 우리는 무슬림이 아니어서 금식을 안 하니까 제발 불 켜질 때까지 깨우지 말아 주세요."
아저씨는 개떡 같은 내 터키어를 찰떡같이 알아들으시곤 알겠다며 걱정 말라하시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뜻밖의 성과에 나는 신이 났다. 오늘 늦게까지 놀길 참 잘했다, 아저씨를 만날 운명이었구나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 편한 마음으로 곯아떨어졌다. 그날 새벽, 정말로 북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아저씨는 다시 우리 집 창 밖에서 북을 두드리셨다.
그럼 그렇지.
부라즈 투르키예 Burası Türkiye인데. (여긴 터키잖아.)
휴.
2015년 6월 30일, 이스탄불 우리 집 앞.
*아잔 : 무슬림들은 하루 5번 메카 방향을 향해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 시간은 일출 일몰 시간에 따라 매일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각 사원에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람인 무앗딘(터키에서는 모에진이라 한다.)이 있다. 이 무앗딘이 기도를 알리는 소리를 '아잔'이라고 한다.
**이프타르: 아랍어로 아침식사를 뜻한다. 또한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지고 나서 먹는 그날의 첫 끼니를 이프타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