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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Nov 07. 2020

통행금지가 실시된 프라하, 얼마나 아름답게요.

[프라하 일기] 오전 여섯 시, 일출 감상을 위한 프라하 성 산책.




락다운이 시작되면서 내 체코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사실 변화라고 하기엔 일상 전체가 전부 바뀌어버린 셈이라 처음에는 마치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초유의 봉쇄조치 아래 맞이한 11월, 무심하게도 프라하는 숨이 막히게 아름답다. 


고백하자면, 이제야 프라하의 진면모를 발견한 기분이다. 길 위를 빼곡하게 메운 관광객들로 인해 내가 걷는 길바닥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그 시절에는 절대 만날 수 없던 아름다움을 체코를 처음 만난 지 8년 만에, 체코에 살게 된지 4년 만에 하나 둘 발견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종종 기분전환을 위해 작은 쇼핑이나 외식을 했지만, 상점들이 문을 닫고 식당마저 포장만 가능한 요즘은 그마저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사치가 되었다. 소비조차도 제한된, 모든 것이 멈춘 이 곳에서 요즘 나는 걷고 또 걷는다. 돈을 지불하고 무언가를 소유하는 대신 눈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가슴에는 맑은 공기를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아주 욕심을 버리지는 못해서, 예쁜 시절들을 오래오래 들춰보고자 카메라는 꼭 챙겨나간다.


그러다 문득 2017년에 보았던 물안개가 생각났다. 출근 전 아침 일찍 프라하 성 근처에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막 떠오른 해가 도시를 자욱하게 덮은 물안개까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던 풍경이었다. 황금색 안개가 파도처럼 하늘과 땅 사이를 넘실거리는 그 모습에 넋을 잃고서 숨을 죽였던 그 순간의 고요까지도 완벽했던 경험이었다. 갑자기 일출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도시와 텅 빈 나의 스케줄. 일출을 보기에 완벽한 조건이다.


해는 생각보다 빨리 떠올랐고, 일출 광경을 놓칠세라 프라하성이 있는 흐라드차니 광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 숨이 가쁘거나 말거나 하늘은 점점 밝아진다.


곧장 알람을 맞춰두고 다음날 오전 여섯 시, 네루도바 거리를 올랐다. 채 가시지 않은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너머로 구름 아래쪽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인적 없는 거리에는 주황색 반사띠가 둘러진 작업복을 입고 환경 미화원들만이 거리 곳곳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중이었다. 


중세에는 주소 대신 집주인의 직업이나 가문의 문장 등을 대문 위에 표시해 다른 집과 구분하는 하우스 사인(House sign)을 사용했는데, 네루도바 거리는 이 하우스 사인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거리다. 지난 4년을 매일 같이 손님들과 걸어 내려오며 각각의 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길을 새벽에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너무나 당연했던 내 일상이 그리워졌다.



다행히 늦지 않게 언덕에 도착한 듯했다. 비록 기대했던 안개도, 동그랗게 떠오르는 태양도 없었지만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일출이 내 마음을 빼앗았다. 프라하에 산다는 건 한국에서는 피할 수 없었던 마천루들과 이별하는 일이다. 100미터가 넘는 건물이 도시 전체를 통틀어 고작 3채뿐인 이곳엔 기껏해야 5-6층 정도의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다시 그 붉은색 지붕으로 빼곡한 땅의 풍경은 탁 트인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체코에 살면서 처음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단 걸 알았다. 맑은 공기와 낮은 건물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의 여행이 멈춘 이 순간 나는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 산책이 아닌 이곳에 사는 나를 위한 산책을 가능한 한 많이 즐겨야겠다고 결심한다.


사진 우측에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게 보인다. 체코에서는 비가 올 때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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