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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Apr 29. 2021

그시절엔 나도 저랬지.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으로 휴가를 온 지 어느덧 10일째. 내가 동생의 집에서 혼자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동생은 혼자 강원도에 다녀왔다. 첫날은 자기가 유일한 투숙객이었던 조용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었고, 다음날 도착한 새로운 도시의 새로운 숙소가 마음에 쏙 들어 내리 이틀을 묵는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다른 여행자와 대화를 하게 되었단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여행지에서의 밤을 잔뜩 누리고 있는 듯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그 여행자는 갓 스무 살이 된 대학생이었다. 어느덧 십 년이 훌쩍 지나버린 나의 스무 살을 떠올렸고, 더 이상 그녀가 스무 살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는 내 동생은 그녀의 지나버린 스무 살 시절을 생각했다. 참 좋은 나이라고, 참 부러운 나이라고 우리는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동생에게서 톡이 왔다. 숙소에서 얘기를 나누었던 스무 살의 그 친구가 연락을 했단다. 자기 이름은 혹시 기억하냐며. 아주 짧은 만남이었는데도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 동생에게 연락을 준 것이다. 애석하게도 동생은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스무 살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의 나도 그랬었다. 나의 삶에 들어오는 그 모든 것을 특별하고 귀중하게 여길 때가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조차도 그 스침 자체를 큰 인연으로 여겼고, 그래서 모든 인연에 진심을 담아 나의 마음과 시간을 쏟고는 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넘치던 시절이었다.


슬프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때와 같은 열정이 없다. 누군가를 알아가고자 하는 넘치는 호기심과 의지가 없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이라기보단 예전에는 내 삶에 들어오는 열 명의 사람들 모두를 알고자 했다면, 이제는 그중 단 한두 명에 그치고 만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라기보다는 이미 내 삶에 들어와 있는 이들을 지키고 그들과의 관계를 살뜰히 보살피기에도 벅찬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물론 스무 살 때의 체력과 기억력이 더 이상 내게 없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아주 가끔 기꺼이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이 나의 일상에 짠- 하고 나타나 주면 그날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행복해진다. 관계 맺기에 열정적이고 애정 가득하던 스무 살의 나를 꺼내어준 그 사람에게 참 고마워진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과 유독 자주 마주치곤 하는데, 그래서 여행이 그립다. 


봄이란 모름지기 무언가 다짐하고 또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내 보기로, 작은 모든 것에 애정을 주고 그런 작은 벅참과 행복들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잠자리에 들던 스무 살의 나를 한 번 꺼내보기로 다짐을 해본다.



함께 했던 베를린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라티노 청년과 춤을 추던 4년 전 그녀. 꼭 말해주고 싶다, 너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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