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꺾지 마세요.
오늘의 사연입니다.
DJ님!! 저에게 아주 기쁜 소식이 있어 이렇게 사연을 전합니다.
며칠 전 기나긴 저의 짝사랑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짝사랑을 하던 동창이 있는데요. 드디어 거의 7년 만에 제 마음을 알아준 것 같습니다. 드디어 모태솔로 탈출이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짝사랑한 그녀가 먼저 다가와 준 것이 기쁘면서 때로는 믿기지가 않아요. 과연 그녀가 친구일 때는 제가 괜찮았는데 남자 친구일 때의 저를 실망하면 어쩌지 싶고요.
며칠 전 그녀에게 밤늦게 전화가 왔어요. 약간 술에 취한 듯했습니다. 대학 동아리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면서요. 평소에도 가끔 뜬금없이 전화가 오기도 하던 터라 그날도 전화를 받았죠. 물론 그 친구는 그냥 하는 전화이지만 저는 전화가 올 때마다 순간순간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면서 두근대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습니다. 앞에 얘기한 대로 「술을 좀 마셨고, 집에 가는 게 힘이 드니 근처면 좀 데리러 와 주면 안 되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일찍 집으로 들어와 대충 씻고 PC게임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그녀의 부름에 밖인 척하고 얼른 가겠다며 전화를 끊고 정말 빛의 속도로 씻고 준비해서 택시를 타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마침 술 집 앞에서 동아리 친구들과 헤어지려고 인사를 하고 있길래 급히 와서인지 떨려서인지 모를 가쁜 제 호흡을 다듬고 그녀에게로 다가갔죠. 그녀는 발그레한 얼굴로 살짝 술에 취해 저를 보고는 활짝 웃더군요. 역시나 예쁜 그녀의 미소에 저는 또 한 번 「별일 없이 집에 있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택시를 잡으려는데 그녀가 술이나 깰 겸 조금 같이 걷자고 하더군요. 대학 옆 유흥가라 걸을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곳이 어디든 저에게 무슨 상관 이겠습니까? 그녀와 함께라면요.
저보다 몇 발짝 앞에 걷던 그녀가 혹시나 넘어질까 봐 뒤에서 양 팔로 가드를 만든 채 뒤따라 걸었습니다. 그렇게 약간 휘청거리듯 걷던 그녀가 한참을 걷다가 갑자기 뒤로 확 돌더군요.
깜짝 놀라 그녀 뒤로 동그랗게 모아 가드를 만들고 있던 양팔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깔깔거리고 웃더군요.
“야, 내가 강도야? 꼼짝 마! 손 들어! 라고 했어?” 라면서 요.
그렇게 깔깔 웃는 그녀의 모습이 예뻤고, 지금의 제 제스처가 저도 우스워 같이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그녀가 웃음을 멈추더니 말하더군요.
“야,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뭘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변한 공기에 저 또한 얼었습니다.
쭈뼛거리며
“뭘? 내가 뭘 이러는데…?”
라고 하자, 그녀는
“아, 진짜 답답이! 언제까지 내 뒤에서 걸을 거냐고? 취해서 비틀거리면 부축하는 척 팔짱도 껴줄 수 있잖아.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천천히 걸어야 하는 건데?”
라고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머릿속은 하얘졌고, 주변 차도에서 들리던 자동차 소음도 멎은 느낌이었습니다. 벙쪄있는 제 모습을 보고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제 옆으로 와서 제 팔짱을 끼더군요. 그러면서
“나 똑바로 걸으려고 기대는 거야. 딴마음 품지마” 라고요.
순간 팔이 어는 기분이고 어느 팔과 다리부터 내디뎌야 하는지도 모를 것 같았는데 팔을 잡아당기는 그녀를 따라 어정쩡하게 같이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내 어정쩡한 발걸음 속도에, 나는 나보다 작은 그녀의 보폭에 맞춰 버스 정류장 두 정거장쯤을 걸었습니다.
원래도 친한 편이라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요 며칠의 연락은 왜 이렇게 꿈만 같고 신기한지 모르겠어요. 일상처럼 주고받던 안부 메시지에도 필터가 끼었는지 그저 달달한 느낌이랄까요?
그날 이후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오늘이 정식 첫 데이트날입니다. 저는 그다음 날부터 바로 보고 싶었는데, 워낙 인싸인 친구라서 오늘에서야 보네요. 살짝 서운한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제대로 고백을 하지 못했었으니 오늘 저녁에 그동안의 제 마음을 얘기하고 정식으로 사귀자고 할 예정입니다. '오늘부터 1일' 그거 하려구요. 그리고 앞으로 그동안 그녀와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함께 해볼 생각이에요. 오래도록요.
와~!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누군가를 이렇게 긴 시간 마음에 뒀다는 것부터가 사연자님의 지고지순함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요 며칠이 정말 행복했겠어요. 사연을 들으니 사연자님이 얼마나 애를 끓이며 그녀를 좋아했을지 알겠습니다. 오죽했으면 7년간 짝사랑을 받던 그녀가 먼저 저런 말을 했겠어요? 사연자님의 마음을 예쁘게 봐준 그녀 또한 예쁜 마음씨를 지닌 사람 같네요.
오늘의 고백과 데이트가 사연자님께는 7년간의 마음을 전달하는 일일 거고, 그녀와의 예쁜 사랑의 시작일이니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사연 속에서도 여러 감정이 느껴집니다. 설렜다가, 걱정됐다가, 행복했다가, 또 서운했다가 아주 며칠 동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계시지 싶어요.
자! 고백에 성공을 위해서 멋진 말도 예쁜 꽃도 중요하지만, 우선 물 한 모금 천천히 드시고 심호흡 먼저 하고 릴랙스부터 하죠.
사연자님도 들어보셨을 텐데요.
골프선수들은 정말 중요한 홀에서 샷을 날릴 때에는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하던 대로만…’ 이라는 주문을 외운다고 해요. 고백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말을 하고 싶을 때는 오히려 힘을 빼고 마음에 귀 기울여 보세요. 힘을 잔뜩 주면 될 것도 안 되지만, 힘을 빼면 적어도 손해는 안 보는 게 많거든요.
꼭 화려한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그녀는 그동안 사연자님이 보여준 수많은 진실된 행동과 마음을 느꼈을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이라고 꼭 멋진 말을 하려고, 당신의 그 긴긴 세월의 마음을 다 털어놓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저 그날 느낀 설렘, 그리고 요즘의 사연자님이 어떤 마음인지를 진솔하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미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연자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그녀도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시작하는 젊은 연인에게 시작의 설렘을 초치려는 건 아닌데요. 사연 속 얘기처럼 긴 시간 짝사랑하던 그녀와 이제 시작했고, 스스로 부족해 보이는 것도 걱정이고, 너무 많은 걸 해 보고 싶은 사연자님의 사랑이 조금 더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마디 더 해보자면요.
우선 무엇보다 지난 7년 간의 짝사랑에 대한 본전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풋풋했던 어린 시절부터의 아름답고 숭고한 감정에 웬 본전이라는 저속한 표현인가 싶죠? 사연자님의 감정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에 문제는 모두 다 ‘본전에 대한 보상심리’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죠. 긴 시간의 사랑의 결실이 너무 소중하고 잘하고 싶어서 ‘본인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여줄지, 또 그녀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줄지’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괜스레 「내 마음 같지 않은 너」 가 미워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여전히 당신만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다는 마음이 들면서 상대를 위한 마음들이 오히려 서로에게 부채의식을 갖게 할 수 있어요. 그런 사랑은 당연히 쉽지 않겠죠? 그러니까 롱런을 위해서 호흡 가다듬고 천천히 웜업 하시면서 힘 빼고 오늘부터 긴 마라톤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벌써부터 인싸인 그녀와 바로 만나지 못해 서운했다고 했는데요.
이 DJ가 중학생 시절에 겪었던 일화를 들려드릴게요.
학교가 끝나면 아지트처럼 모여 지내던 친구네 집이 있었습니다. 학교와 가까운 아파트였는데요. 어느 날인가 그 친구네 집으로 가기 위해서 지나는 다른 아파트 동 1층 공용 화단에 노란색의 싱싱한 튤립이 한 송이 피어 있었습니다. 오가며 며칠째 너무 예쁜 그 튤립을 봤어요. 한 송이가 두 송이, 세 송이가 되더군요.
하루는 친구네서 놀다가 집으로 오면서 다시 그 화단을 지나게 되었고,
‘그 예쁜 튤립을 꺾어다가 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에게 주고 싶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 실전에 옮기진 않았고 집에 와서 그러고 싶었다는 얘기를 엄마께 했습니다. 엄마를 위하는 제 마음에 엄마가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요. 저희 엄마는 의외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DJ야, 꽃이 거기에 피어 있으니까 예쁜 거야. 네가 예쁘다고 꺾어오면
많은 사람들이 그 꽃을 볼 수가 없잖아.
그 꽃은 그렇게 거기 있어야 예쁜 건데…
그리고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꺾은 꽃은 오래가지 않아. 금방 시들거든… 그러니까 꽃은 꺾는 게 아니야.
그저 바라보는 거야.
엄마 생각해 준 마음은 고맙다."
라고요. 중학생쯤이 되었으니 저는 제가 꽤나 어른 같아졌다고 생각했는데요. 엄마의 저 말씀을 듣고
‘아! 역시 어른은 저런거구나.’ 라고 깨달았어요.
사연자님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오래오래 보고 싶다면, 꺾지 말고 그냥 그대로 바라봐 주세요.
그리고 물도, 태양도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적당한 물과 태양이 그녀와 사연자님의 사랑을 더 오래오래 만개할 수 있도록 해 줄 거예요.
이런 말 들었다고 갑자기 초반부터 밀당에만 너무 신경 쓰시면 연애 라디오로 배운 거 티 나니까 안 돼요! 진실함은 그대로 두되,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하려거나 받으려 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길 드리고 싶었습니다.
첫 데이트와 고백이니 꽃이 필요하겠죠? 뭐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저라면 꽃 선물 반가울 것 같습니다.
어떤 꽃이 좋을까요? 막상 추천하려니 정말 어렵네요.
음~ 안개꽃 어떨까요? 저는 우선 사연자님의 스토리를 듣고 풋풋하고 순수하면서 소담한 마음이 느껴져서 안개꽃이 떠올랐습니다. 안개꽃의 꽃말이 ‘맑은 마음, 진심, 사랑의 성공’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흔히 안개꽃은 메인 캐릭터라기보다는 조연 같은 역할을 해서 어떤 꽃과 든 잘 어울리잖아요. 그녀가 어떤 꽃이든 사연자님이 조화롭게 품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해 봅니다.
그리고 꼭 잊지 말길 바랄게요. 그녀를 왜 좋아했는지를요.
혹여 앞으로도 그녀의 모습이 사연자님의 기대와 다르다고 실망하면 안 돼요.
그녀가 그녀라서 좋은 거였잖아요. 그러니까 사연자님도 사연자님 그대로로 멋지고 당당하게! 연애하세요.
앞으로 두 분 오래오래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되시길 이 DJ가 응원할게요.
제 노래 추천이 생각보다 단순해서요. 꽃얘기와 어우러진 사연자님의 마음을 담은 노래 들려드립니다.
[김연우의 '유성화원(꽃보다 남자) OST’]
https://music.youtube.com/watch?v=SoLfmUQv_bo&si=KRUbOrOBKB8vc4FG
** 출처 : 유튜브뮤직
세상의 모든 꽃은 모양과 향이 어떻든 그저 예쁘죠.
종족 번식을 위해, 열매를 맺기 위한 세상의 이치를 품고 있어서 제 각각이어도 제 각각 예쁜 걸까요?
당신의 마음 속에도 꽃이 한 가득 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