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야 가족이 되어간다
본가에 다녀왔다. 엄마 생일이기도 하고, 우리 집에 비로소 나까지 더해져 전원 환자 모임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겸사겸사였다. 부모님 두 분 다 오면 오는 거고, 가면 가는 거다 하는 태도로 대하시다 올해부터는 갑자기 언제쯤 오냐 자주 물어서 뭔 일인가 싶었지만 뭐 예상대로 그러했다. 인간은 정말로 낡아가는 존재다. 어떻게 낡아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고 33년 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무언가들을 하는 중이다. 어색함을 조금씩 이겨가며 말이다.
늘 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바다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걷고, 또 걷고. 그런 것들을 해왔지만 이전과는 아주 많이 다른 게 좀 있었다. 나는 어느새 엄마, 아빠에게 허락을 받는게 아니라 제안을 하는 입장이 되고, 그들은 나의 의견에 귀기울이는 입장이 되었다. 작게는 한 끼 메뉴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노후자금/내 전세자금, 이후에 벌어질 일 등등.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서 놀라웠다.
근데, 저런 것보다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엄마가 결혼식 가서 입을 옷을 사는 거도, 아픈 엄마 덜 힘들게 해주려고 외식하자는 말에 선뜻 나서는 아빠도, 그 다음에 같이 살던 고향 동네를 보고 오자는 말도 들어주는 것도 다 신기했다. (이게 왜 놀랍냐면 우리 가족은 30년 이상 아빠 1인 독재 체제로 살아옴) 엄마는 한 번도 도전해보지 않은 스타일에 도전했고, 아빠는 나의 외로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타투 부자인 내 팔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게 다 뭐냐고 새삼스럽게 물었을 때였다. 나는 다 문신이라고 대답은 하긴 했으나 괜히 쫄고 움츠러 들어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나의 타투들을 전부 가리고 싶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근데 아빠가 왜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 와중에 거짓말하고 싶지 않아서 가리고 싶은 것도 있고, 표현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꾸 움츠러 들었다. 싫지만 습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자 아빠가 자괴감에 빠져 하던 일을, 그걸로 대신하는가 싶어서 묻는 거라며 웃고 넘겼다. 가리고 싶은 건, 가리지 말고 그냥 살라고도 했다.
무엇이 우리를 변하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정말 잘 먹고, 잘 자다 왔다. 엄마도 그랬다. 엄마는 몇 번이고 내가 곁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고, 좋다. 라고 했다. 나는 그 마음이 뭔지 너무나도 잘 알지만 부끄러워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아빠도 밝았다. 처음으로 내 미래와 과거에 대한 잔소리 없이 평안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동네에 아주 유명한 빵집이 생겨 빵수니로서 너무 먹고 싶어 거기 갔을 때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고 불안해 어쩔 줄 몰랐던 거 빼고는 아무 증상도 없었다. 엄마, 아빠가 일부러 사람이 적은 곳만 데리고 가줘서 그런 것도 있었다.
우리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죽은 사람이 있다. (할아버지가 과거 억울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된 것이 모든 시작이긴 하지만 그 일이 있다고 모두 미쳐버리는 건 아니니까.) 아빠의 둘째 형인데, 고향 그 집에서 카페를 하는 작은 엄마와 아빠나 다른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꼭 욕을 한 마디씩 하고 넘어갈 만큼 싫어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그 얘기를 듣거나 하는 게 재미있진 않았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재미있었다. 너무 싫다. 지옥에서 불 타는 것도 싫으니 무의 세계에서 의식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시 태어나지도 못하게. 아빠가 뒤틀린 것도, 엄마가 마음에 화를 쌓은 것도, 그로 인해 내가 병든 것도 다 그 사람의 책임이 어마무시하게 크게 있으니까. 전부 탓을 할 순 없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추가 설명을 하자면 가정폭력을 형제와 부모에게도 휘두른 놈이고, 우리 엄마의 시집살이는 그 인간이 주도했다. 내 유년시절이 무지하게 외로웠던 건, 그 인간의 기대를 채우려 엄마, 아빠가 지나치게 애쓴 덕분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해수욕장과 캠핑장을 잇는 산책로를 걸을 때였다.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기도 하고, 평일이라 사람이 없어서 조용히 편안하게 엄마랑 잘 걷다 왔다. 너무 예뻐서 공유하고 싶었지만 엄마랑 수다 떨기 바빠서 사진 하나 없는 게 좀 아쉽다.
열심히 찍은 나고 자란 동네의 풍경 사진으로 마무리 하겠다. 사실은 회사에서 일 할 때 써먹을라고 잔뜩 찍은 거지만 그냥 봄날의 그 곳은 잔잔하게 예뻐서 자꾸 찍고 싶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