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way May 11. 2016

색깔론

좌파 우파 그 얘기 아님



하늘색은 연분홍에 비하면 차가운 색이다.

흰색 옆에 서면 탁한 색이다.

남색에 비하면 희미하며,

로드골드나 버건디나 핫핑크에 비하면 평범하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내게 말을 잘 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게 왜이렇게 말이 없냐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내게 강단을 좀 가지라고 했고, 그를 아는 또다른 누군가는 내가 고집불통이라 했다. 누군가는 내게 수수하니 착해 보인다 했고, 누군가는 걘 왜 그렇게 도도하냐고(혹은 도도한척 하냐고) 건너건너 불만을 표했다. 누군가는 내게 말랐다 했고 누군가는 '너 왜이렇게 퉁퉁해' 라고 했다(부들부들). 누군가에겐 좋은 의미로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인다는 말을, 다른 누군가에겐 좋지 않은 의미로 아직 한참 어리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날 누군가에겐 '얼굴 좋아 보이네'라는 말을, 누군가에겐 '무슨 일 있어?'란 말을 들었다. 누군가는 내게 똑똑하다 했고 누군가는 멍청하다 했다. 누군가는 내가 씩씩하다 했고 누군가는 왜 그리 소심하냐고 했다. 누군가는 내가 언제나 확신이 있어보여 좋다고 했고 누군가는 내가 너무 많이 흔들린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 밝은 머리가 더 어울린다 했고 누군가는 어두운 머리가 낫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가 여성스럽다고 했고 누군가는 남동생같이 털털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가 이성적이고 차분하다 했고 누군가는 내가 감성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어느 때에는 내게 수더분하다 했다가, 어느 때에는 예민하다고 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내가 따뜻하고 순수하고 정의로우며 열정적이고 의젓하면서 또렷하고 명민하며 개성있는 맑은 하늘색이길 바란다. 고백하건대, 우습게도 가끔은 그렇게 믿을 때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누군가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차갑고 의심쩍고 비겁하며 안일하고 철딱서니없고 희미하며 답답하고 평범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애초에 하늘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산다.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지닌 일곱빛깔 무지개 같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 또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에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보다 두려운 것은

그것이 두려워 탁해지는 일이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수채화를 그릴 때면 물통에 붓을 씻었다. 빨강 노랑 초록 온갖 색이 섞여든 그 물은 한번도 아름다워 보인 적이 없다. 무슨 색이라 부를 수 조차 없게 애매하고 탁한 빛을 띄었었다.


최소한, 그런 사람만 되지 않았으면 한다.




- 2016. 5. 11. 1:31 AM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사람과의 늦은저녁 한 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