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을 참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순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얼큰하게 담겨있는 국이 조금 더 좋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먹는 순대국은 이맘때쯤엔 가장 식욕에 불을 당기는 메뉴이다.
오늘 퇴근길에 순대국 집에 들러 얼큰한 맛 한 그릇을 먹고 왔다.
순대국을 제대로 즐기려면 반찬은 3가지 정도가 필수다. 깍두기, 배추김치, 마늘+쌈장
동글한 순대는 많지 않아도 되지만, 고기 맛이 씹히는 부속은 많을수록 좋다. 오늘 간 순대국 집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게다가 밥 한 공기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숭늉이 또 나온다. 배불리 다 먹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힘겹게 숭늉 한 수저 넘기고 나면 '아! 이제 본격적인 마무리가 시작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손뼉 쳐주고 싶은 코스다.
여자들은 성인이 되고 나서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지만 사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순대국을 즐겼다.
집 근처에 골목골목으로 식당이 뻗어나가는 시장이 하나 있었는데, 멀쩡한 이름을 두고 '순대골목'이라고 불리는 그곳에 아마도 나의 첫 순대국이 있었을 거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까만색 학생 구두를 사기 위해 엄마와 함께 시장을 들렀다가, 이른 저녁이면 시장 끝에 있던 목욕탕에서 청소일 하셨던 엄마를 마중 나갔다가 먹곤 했으니 아마 나의 처음도 거기에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 언니와 함께 약속을 잡고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아갔던 순대골목은 어릴 때 미쳐 보지 못한 풍경이 많았다. 식당들은 반 지하로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낮은 지붕이었고, 간판 앞으로 이빨까지 보이는 삶은 돼지머리가 가득했으며 젊은 여자는 우리 둘 뿐이었다. (한수저 뜬 고기 위에 돼지 털이 있네 쯤은 일도 아닐 정도로 엄청난 하드코어였다) 그게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여태껏 두고두고 그때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이수역, 보라매역, 역삼역, 정자, 판교
아무튼 자주 가던 동네나 다녀본 회사 근처에 나름 방귀 좀 뀐다 하는 순대국 집은 뻔질나게 다녔었다. 이건 어째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것 같단 생각도 들고.. 나트륨 덩어리기만 한 순댓국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순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이쯤이면 네가 찾을 때도 됐지 하고 셀 정도이니 말이다.
왜 이렇게 순대가 좋은가 자꾸 생각하다보니 세상에 나는 이 '순대'라는 이름마저 좋다. 순자나 순이 정도로 느껴지는 세상 착하고 때묻지 않은 이 푸근하고 친숙한 이름까지도 좋은 것이다.
아아 좋아하는 것엔 이유가 없나니
가뜩이나 좋은데, 이건 뭐 계절이 반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