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리 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고, 1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일 텐데 과거는 현재를 흉내 내어 상처 내기도, 위로 주기도 한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이란 영화에서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지기 하루 전으로 시간을 돌려 딱 그 하루의 시간을 과거도 현재도 아닌 채로 반복해서 살아간다. 영화의 내용과 상관없이, 살면서 겪은 어떤 사건은 일순간 여전히 그 시간에 갇혀 사는 기분을 준다.
오늘 친척의 결혼식에서 젊은 삼촌을 따르는 조카아이를 보며 오래 전의 나를 떠올렸다. 딱 그 나이의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나 어른들의 생신, 경조사 같은 자리에서 내 손을 잡고 놀이터를 가거나, 방방을 태워 주거나, 문구점 장난감을 사주거나 했던 사람.
오랜만에 사촌오빠를 떠올렸다.
터울이 꽤 있어 막내 삼촌뻘이었던 사촌오빠는 늘 다정하고, 장난끼 많은 사람이었다.
언니와 내게는 특별히 더 친오빠인 양 친근했는데, '이번 중간고사 잘 보면 오빠가 휴대폰 사줄게', '오빠도 여자 친구 좀 소개시켜줘' 같은 일상적인 말들을 자주 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오빠가 해주었던 것들이 시시해지고, 결혼 후에는 귀찮다고 느꼈던 적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명절 전의 안부 전화나 생일 축하 문자 같은 것에도 시큰둥하거나, 그 여전한 다정함에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마지막 전화도 그런 짜증이었다.
그 마지막 씬 하나로 모조리 다 기억하고 싶으면서도, 1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상처도 위로도 모조리 다 드러내버리고 싶은 '잊혀짐'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인데, 오늘 어린 조카와 삼촌의 투닥거림을 보며 전혀 생각지 못한 우연한 순간에 오빠에게 짜증을 냈던 마지막 통화와, 엄마에게 오빠의 죽음을 전해 들은 통화. 두 순간 직후에 갇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모조리 다 생생히 기억 날것만 같은 잊혀짐이었다.
아직 휴대폰 연락처 목록에서 오빠를 지우지 못했다.
이름이 'ㄱ'으로 시작해서 여전히 제일 윗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건 그냥 어떤 기억으로 혹은 감정으로 현재가 되기도 하는 내 과거의 자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내 과거의 자리에서 여전한 다정함으로 빛나는 사람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