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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Jul 28. 2024

세상의 모든 앱이 사라져 버린다면

전시 <디스앱피어! : DISAPPEAR!>

언제든 '잠금해제'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스마트폰. 그 속에는 우리의 일상을 인도하는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이 존재한다. 분명 일상을 보다 편리하고 알차게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인데, 어플과 함께인 우리의 하루는 전보다 메말라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일상에 스며든 어플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는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그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대학생 연합 광고동아리 '애드파워'가 지난 1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진행한 전시 <디스앱피어! : DISAPPEAR!>에서 이 질문에 대한 그들만의 답을 들어볼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앱이 사라져 버린다면?"

스마트폰, 이곳은 앱과 인간이 함께 일하는 공간입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인간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워크샵을 떠난 앱의 빈 자리를 발견합니다.
앱과 함께 일하며 효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인간들은
앱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점차 불편과 불안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앱에 가려져 일상 속에서 놓치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들이
앱의 부재를 통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발견한 일상 속 가치, 앱과 함께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인간들은 나중에 돌아올 앱을 기다리며,
이를 앱에 더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상 속 가치와 결합된 앱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전시 <디스앱피어! : DISAPPEAR!>는 마치 동화 같은 스토리라인과 함께 시작한다. 마치 어플이 살아있는 인생의 동반자처럼 표현되는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어플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로 인해 잃었던 가치의 존재를 알게 된다.


애드파워는 가장 흔히 쓰이는 열 개의 어플(일정, 음악, SNS, 검색, 교통, 사진, 콘텐츠, 메모, 메신저, 쇼핑)을 선정하여 각각의 어플로 인해 잃어버린 가치를 지적하고, 그것을 구현해낼 수 있는 새로운 어플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그들의 이야기, 나의 취향을 찾아서 : 음악, 콘텐츠, 쇼핑



사람들 사이의 흐름이 유독 중요한 분야가 있다. 음악, 영상 콘텐츠, 패션처럼 소위 말하는 '취향'의 영역은 유행에 의해 일정 부분 결정되고는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모두가 듣는 음악을 듣고, 모두가 보는 콘텐츠를 보면서, 모두가 입는 스타일을 입는다.


애드파워의 음악팀, 콘텐츠팀, 쇼핑팀은 그러한 흐름에서 한 발자국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창작자 혹은 소비자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그 자체를 즐기고, 본인의 취향을 찾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


아티스트와 소비자의 서사를 제공하여 보다 풍부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음악팀 [MusiZic]. 단순히 인기 순위에 따라 콘텐츠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의 내밀한 감정에 집중하는 콘텐츠팀 [두둥!]. 사고자 하는 옷에 서사를 부여해 유행하는 옷 그 이상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자는 쇼핑팀 [EVERYDAY I'M SHOP, PING!].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행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기보다는 본인의 감정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음악, 영상, 패션을 소비하자는 이야기이다. 소비자 본인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세 팀의 제안은 결을 같이 한다.



버려지는 것들의 가치 : 사진, 메모



스마트폰을 통해 무엇이든 쉽게 저장하고, 쉽게 버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적게는 수십 장, 많게는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른다. 급하게 메모장을 켜 생각 없이 작성한 메모들은, 할 일을 다하면 금세 삭제되고 만다.


한때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을 찍기 위해 조심스레 누른 셔터 한 번, 굳이 종이와 잉크를 써가며 눌러 적은 단어 한 글자의 가치는 이제 예전과 같지 않다.


사진팀 [후레쉬맨]과 메모팀 [메모의 꿈]은 각각의 방식으로 버려지는 기록에서 가치를 되찾으려 노력한다. 사진팀이 제시한 해결책은 'Pho-Zzle'. 모두가 완벽한 표정과 자세의 단체 사진을 건지기 위해 찍힌 수백 장의 사진을 가지고, 잘 나온 부분을 조금씩 잘라 하나의 콜라주를 만드는 어플이다.


한편, 메모팀이 기획한 'MEMO-RE'는 지우고 쓰는 과정의 기록을 복원하여 생각의 흐름을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이처럼 버려지는 것들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생각과 마음의 흔적이 남아있다.



보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 일정, 검색, 교통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시간. 그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어플은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할 일을 잊지 않고,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정 관리 어플, 누구보다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검색 어플, 목적지에 도착하는 최단 경로를 알려주는 지도 어플.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써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찾기 어려울 테다.


그러나 계획에 따라, 검색 결과에 따라, 정해진 길을 따라 살아가다 보면 왠지 스스로 기계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일정팀 [라라의 스타일정]은 입력된 스케줄 외에도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활동을 알림으로 제안하는 새로운 일정 서비스 'YOU람'을 선보인다.


또한 순식간에 결론에 도달하기보다 차근차근 고민하는 과정을 겪을 수 있도록 연쇄적인 질문을 제공하는 검색팀 [9OOGLING]의 느린 검색창과 목적지까지의 경로 중 일부를 지워 발길이 가는 대로 걸어볼 기회를 제공하는 교통팀 [뛰뛰팔팔]의 'Add Venture'도, 우리의 일상에 '뜻밖'의 가치를 되찾고자 한다.



꾸밈에 가려진 나의 모습은 : SNS, 메신저



마지막으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벗어날 수 없는 스마트폰이 주는 '실시간 소통'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겠다. 언제나 이어져 있다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소통'의 희소성과 소중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의 두 팀은 오브제 전시를 통해 각각의 문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SNS팀 [세상에 2런 일이]는 인스타그램 속 스토리가 쌓여갈수록 짧게 끊어지는 상단바를 '박음질'에 비유한다. 이 재미난 비유에 착안해 위빙 작품을 만들어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다채로운 모습을 그려낼 것을 제안한다.


이어서 메신저팀 [R.zip]은 재빠른 소통에 의해 지워지워지는 수많은 고민의 흔적에 주목한다. 하고 싶었던 말이 "뭐해?"라는 단순한 한 마디로 치환되는 과정을 투명한 '미로' 오브제를 통해 가시적으로 보여주며 잃어버린 진솔함의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


사실 어플리케이션과 같은 도구의 존재 가치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누구든지 더 정확하고 빠른 길을 알려주는 지도, 가장 예쁜 사진을 찍어주는 카메라, 더 간편하게 쓰고 지울 수 있는 메모장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빠른 길을 두고 굳이 수고를 자처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디스앱피어! : DISAPPEAR!>의 열 팀이 제시하는 어플리케이션은 실제로 활용되기에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되찾고자 하는 가치에 마음 깊이 공감한다. 스마트폰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보다는,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가치를 인위적으로나마 돌려줄 수 새로운 어플의 기획이 차라리 더 현실성 있다는 생각도 든다.


빠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던 나지만, 이렇게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이들이 있음에 안도를 느낀다. 수고로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무형의 가치를, 우리가 잊지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는 희망이 피어오른다.


어쩌면 세상은 그 가치를 되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022. 12. 04.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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