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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May 21. 2020

엄마 옆에 있는 때 꼴리는 대로 살아봐

자퇴 얘기로 시끌벅적한 5월이었다. 큰 아이 담임 선생님과 학교 교무주임 선생님도 만나 뵙고 아이의 뜻을 전달하고 우리의 의견도 밝혔다. 아이 1학년 때도 상담 한번 간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 뵈러 간 건 처음이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젊은 여선생님이었고 아이 말로는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은 선생님이라고 했다. 우리 부부를 학교로 한번 와달라고 했는데 자퇴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하신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좋은 쪽으로 봐주신 것 같았다. 3월에 개학이 연기되고 3월 말부터 4월 중반까지 학교에서 아이들 공부 목적으로 많은 숙제를 내주었다. 숙제는 해야 되는 의무는 아니었다. 생기부나 내신, 중간고사에는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아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제출하지 않은 듯했다. 큰 아이는 그 당시에도 학교 숙제를 성실히 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자퇴를 결정하고 공부에 몰입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잘 해낼 수 있는 아이라는 확신은 들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이는 가고 싶은 학교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 매일 5~6시간 정도 공부한다. 수학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 같다. 자신의 진도에 맞춰 진행 중이다. 학교에 다녔으면 자신의 진도가 아닌 학교 시간표 진도에 맞춰서 공부해야 됐을 텐데 말이다. 아는 것은 과감히 뛰어넘기도 하고 모르는 것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라고는 해본 역사가 없는 아이다. 가끔 학교 수행평가 때문에 책상에 앉아있는 건 보긴 봤지만 수행평가의 결과에 대해 한 번도 얘기들은 적은 없다. 그보다는 자기가 그리고 있는 그림, 만드는 것에 대해 매일 밤새도록 몰입했고 나에게 조잘거렸다.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우려했던 건 이렇게 좋아하는 것에만 몰입하는 아이가 과연 재미없는 것에 시간을 올인할 수 있는가였다.     




얼마 전 동서네 가족과 점심식사를 했다. 더워지는 날엔 자주 들리는 냉면집이었고 코로나고 뭐고 늘 줄 서서 먹어야 하는 집이다. 여름에는 냉면만 팔고 겨울이 시작되면서 4월까지만 김치만두를 같이 판다. 5월인데 입구에서 사장님이 만두를 만들고 계시길래 어떤 만두인가 궁금해서 한 접시 시켜 먹어봤다. 야채가 풍성히 들어간 만두다. 고기도 살짝 들어갔지만 신선한 야채가 만두피 밖으로 훤히 보인다. 아주 담백했다.     


냉면을 다 먹고 나서 큰아이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작은 집 조카 녀석이 큰 아이와 하루 놀기를 원했다. 조카 녀석이 내 눈치를 보며 같이 놀아도 되는지 묻는다.


“큰엄마는 언제나 좋지. 오늘 하루 같이 놀아.”     

조카아이는 펄쩍 뛰며 좋아했다.


그런데 우리 집 큰 아이가 공부하러 간다고 한다. 토요일은 하루 쉬니 그날 만자자고 얘기했다.

“오늘 하루 같이 놀아. 공부는 내일 또 하면 되지 뭐,”


아직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아이에게 사촌동생과 하루는 신나게 놀라고 했다. 아이도 좋아할 줄 알았다. 늘 사촌 아이들을 만나면 같이 자도 되느냐 놀러 나가도 되느냐 해서 헤어지기를 완전히 거부했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공부한다고 자기 쉬는 날 만나자고 한다. 의외의 답이라서 많이 놀랬다.     




커갈수록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긴다. 학생이라면 학교 공부가 될 수도 있고 학원 공부가 될 수도 있겠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오히려 자기가 뭘 좋아했는지 잘하는지 되묻곤 한다. 권위적이고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서 그 기대에 순응하며 살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가면서 때늦은 사춘기 겪기도 한다. 바로 내 이야기다.     


자기 꼴리는 대로 한번 살아볼 수 있는 시기는 부모 그늘 밑에 있을 때인데 취학과 동시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어진다. 우리 아이는 영어 수학학원이 아니라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미술학원이니까 괜찮다고들 한다. 덧붙임에 놀 친구가 없어서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도 얘기한다.     


빈 시간을 스스로 메우는 연습, 노는 것이든 그 어떤 것으로든 하고 싶은 일에 밤새워 볼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하다.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국영수 이외의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고 고학년 때는 영어 수학에 피트를 올리기 시작하는 시기라고들 얘기한다. 학원에 다녀오면 숙제가 기다리고 있고 숙제를 했으니 좋아하는 핸드폰 게임이라는 달콤한 시간도 허락한다.     


그 기준이라는 것이 나와 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누구를 위한 기준이고 선택인지 말이다. 그동안 내가 기준이 없는 삶을 살아냈다. 살아내고 보니 그만큼 헛헛한 것도 없더라...... 좋은 아내, 며느리가 되는 것, 유능한 직원이 되는 것 모두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이렇게 하더라라는 공식을 따라만 했다. 공식을 열심히 따라갔는데 오리려 구렁텅이에 더 깊이 빠져야 했고 힘든 시기가 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 힘든 시기가 올 텐데 남의 기준에 맞춰 살 필요가 뭐있겠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기준이 된다는 것은 드센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더 배려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는 것이었다. 내가 없어도 밥을 차려먹는 남편도 만났고 시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저녁상도 만났다. 일 잘하는 직원이 되기도 했고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만나기도 했다. 특히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아이는 천군만마를 얻어낸 기분이다.          


큰아이가 얼마 전 <Who moved my cheese?>라는 영어책을 읽었다. 읽으라 해서 읽은 것도 아니고 생기부에 신경 쓰지 않는 책 읽기다. 정독을 해서 공부 잘 해내라는 책 읽기도 아니다. 좋아서 읽게 되면 자연히 알고 싶어 지고 정독이 가능해진다.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 독서도 체험도 내 잔상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은 내가 규정해 놓은 세상 그대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정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정한 기준이 무언지 알아가길 희망한다. 살다 보면 자기 기준에 맞춰 산다 해도 힘든 순간들이 오겠지. 내 나이 때엔 나와 다른 고민들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겠지. 하지만 쥐어뜯어봐야 다음 길이 열린다. 저절로 열리는 길은 없었다. 인생 한 번쯤  꼴리는 대로 살아봐야 뒤탈이 없다. 대부분 고난을 맞이해야 그 삶의 깨달음을 알아가더라.. 다산 정약용은 늦은 나이 유배를 가서 진짜로 자신의 학문이 시작되었고 모지스 할머니는 75세부터 30년 가까이 그림을 그렸다. 난 결혼생활 17년의 누적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진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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