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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Jul 23. 2020

감자조림, 여름 밥도둑

감자가 제철이다. 그냥 물에다 퐁당 담가 찌기만 해도 분이 포실포실 나와 먹음직스럽다. 양념을 조금 더해 볶아도 조려도 맛이 그만이다. 여름 감자에서만 느껴지만 파근파근한 식감이 있다. 그 맛이 좋아 요즘은 감자로 만든 반찬이나 요리를 식탁에 자주 올린다. 아이들이 질려하지 않을까 우려해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중이다.      

물에만 퐁당 담가 찐 감자만으로도 맛이 훌륭하다. 물에 삶은 뒤 약불로 수분을 날리니 더 파슬파슬해졌다.


요즘 큰아이는 수학책과 씨름하고 있다. 학교 다닐 때보다 공부량은 몇 갑절이 많음에도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지금 가장 공을 들이는 과목은 수학이다. 어릴 때부터 숫자 붙어있는 것 하고는 담을 쌓았던 아이라서 당연히 수학을 잘하리라는 기대는 애당초 없었다. 수학 말고 다른 재능이 많은 아이니 잘하는 것을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의 결과물은 아니지만 과정 속에 수학이라는 과목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그 과정을 극복 중이다. 난 꼭 그 과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꼭 정석만을 밟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이제 아이가 살아갈 시대는 정석대로의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정석대로의 방법을 고집했다면 자퇴 얘기가 나왔을 때 어떡해서든 아이를 설득했을 것이다. 앞으로 아이가 만나게 되는 시대는 정석이 아니라 자기 식대로가 통하게 될 것이다. 



매일 수학과 씨름하면서 스트레스가 차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원할 때가 많다. 반찬으로 줄 경우도 있고 하나의 요리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신도 매일 이렇게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속상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어제 시장에서 감자를 한 무더기 사 왔다. 큰 아이가 요즘 가장 잘 먹는 반찬이 감자조림이라 저녁 메인 반찬으로 놓아줄 생각이다. 감자를 까서 대충 숭덩숭덩 잘랐다. 너무 잘게 자르면 조리된 뒤 다 뭉개진다. 적당히 큼 자막 하게 자르는 것이 좋다. 지난번 장에서 마늘을 한 접 샀는데  알이 굵은 것들을 골라 2개 정도 껍질을 벗겼다.

    

냉장고에 멸치육수가 있어서 조림 물을 만들어냈다. 보통 간장의 4배 정도 물이나 육수를 섞는다.

간장 하나만으로도 조림으로서의 충분한 맛을 내지만 간장 이외의 여러 가지 소스들을 추가하는 편이다. 오늘은 얼마 전 만들어 둔 맛간장에 액젓과 맛술을 살짝 추가했다. 주로 사용하는 액젓은 십여 가지 정도가 되는데 음식 특성에 맞춰서 추가하면 훨씬 풍부한 맛이 느껴진다. 이런 맛이 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맛이 날 때가 있긴 하다.


요즘 마늘도 제철이라 같이 조림하면 감자처럼 맛이 좋다. 감자보다는 빨리 무르기 때문에 시간 간격을 두고 넣어주는 것이 좋다. 조림 물이 반 정도 없어질 때 마늘을 넣으면 너무 무르지도 익지 않아서 아리지도 않은 적당히 잘 조려진 맛을 낼 수 있다.


일반 간장(양조간장)과 맛간장을 따로 구분해서 쓰는 편이다. 맛간장은 어느 날 하루 날 잡아서 많이 만들어둔다. 보통 3주 정도 사용할 분량 정도를 한꺼번에 만든다. 만들어서 김치 냉장고에 두고 조금씩 덜어 쓴다. 한번 만들기가 수고스럽지만 그 수고스러움을 잊게 해주는 맛이 나온다. 맛간장을 쓰면 요리 과정이 단축되는 경우도 많아서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한식에는 조림요리가 많아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고  비빔국수나 메밀소바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자주 해먹지는 않지만 도토리 묵 무침은 정말 끝내주는 맛을 준다. 


맛간장을 만들 때 단맛을 추가했기 때문에 조림 물에 설탕을 사용하진 않고 마지막 다 조려진 뒤 올리고당이나 물엿으로 겉면만 매끄럽게 코팅해 줬다. 맛간장이 아니라 일반 양조간장이라면 조림 물 만들 때 단맛을 추가하기만 하면 된다. 은은한 단맛을 원하면 올리고당이나 물엿을 사용하고 쨍한 단맛을 원하면 설탕을 추가하면 된다.


고춧가루를 조금 첨가하면 훨씬 더 먹음직스러워진다. 물론 맛도 칼칼해져서 더 좋다. 작은 아이는 고춧가루 들어간 음식은 잘 안 먹기에 먹기 전 좀 덜어두고 고춧가루를 넣는다.


밥상에 올리니 큰 딸이자 엄지 척을 올린다. 맛이 좋은 모양이다.

요리 때마다 간장 이외에 약간의 다른 소스들을 첨가해 맛의 변화를 조금씩 준다. 적당한 맛을 찾는 건 요리하는 사람만이 안다. 적당한 변수가 생기는 것도 재밌다. 레시피대로 하는 것보다 내 맘대로 가 좋다. 물론 망칠 때도 있긴 하지만 맛을 찾아내는 과정들이 참으로 재밌다.


삶의 기본적인 가르침들은 어디서든 비슷한 것 같다. 책이든 요리든 직장 생활이든 일맥상통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내 일상들에 더 정성을 들이고 매일 집밥에 정성을 들인다. 

어쩌다 만드는 특별식도 좋지만 이런 매일의 상차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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