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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May 02. 2020

고기와 함께 새우젓 무침

집에는 여러 가지 젓갈이 있다. 새우젓, 멸치액젓, 까나리액젓, 참치액젓은 보통 음식을 할 때 간을 맞추거나 무침 등에 사용한다. 또 명란젓이나 창난젓, 오징어젓, 조개젓들은 밑반찬용이다. 밑반찬용은 더운 여름 입맛이 떨어졌을 때 많이 먹는데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조리할 때 사용하는 젓갈이 제일 많다. 매일 사용하게 되니 떨어지는 날이 없다. 그중 많이 사용하는 젓갈은 새우젓과 멸치젓 정도다.     



새우젓은 크기가 가장 큰 육젓부터 추젓, 오젓이 있다. 크기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크다. 보통 찌개나 간을 맞추는 용도로 사용할 때는 오젓이나 추젓을 사용하고 계란찜이나 새우젓을 무쳐 먹을 때는 육젓을 사용한다.      

음식의 맛은 간이 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 간이 잘 맞는 음식은 대체적으로 먹을 만하고 그 이외 감칠맛이라든가 시원한 맛, 비주얼 등 복합적으로 느껴짐에 따라 맛을 좌우하는 것 같다.      



우리 집의 집밥의 국이나 찌개 종류는 새우젓이나 멸치액젓으로 간을 맞춘다. 된장찌개나 고추장찌개 같은 장으로 끊여내는 음식이 아니면 말이다. 새우젓이나 멸치액젓은 숙성이란 기간을 거쳐서 소금의 간보다는 그 이상의 감칠맛을 끌어낸다.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내준다.     



겨울이 시작되면 김장을 한다. 시어머니와 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친정엄마와 함께한다. 충청도 분이신 엄마는 새우젓과 소금으로 간을 하시고 무와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정도로 간단한 양념들만 사용하신다. 양념이 김치에 잘 붙게 하기 위해 진한 육수와 찹쌀풀을 쑤어 같이 잘 버무리고 밤새 절여 놓은 배추에 속을 잘 넣고 야무지게 겉잎을 돌려 싸놓는다. 옆에서 배추 속 한 장 뜯어다 양념 속과 함께 먹는 배추 속 쌈은 그야말로 별미다. 김장하기 전 돼지고기 몇 근을 사 와서 수육을 하고 생굴 등과 함께 싸 먹으면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변한다.     



여름 배추보다 겨울 배추가 맛이 월등히 좋다. 김장 시에만 맛볼 수 있는 절임 배추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쌈 재료라서 귀하다. 요즘은 보쌈집 같은 곳에서 겨울 한철에 세트 메뉴로 있기도 해서 김장을 하지 않더라도 그 맛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김장 때 그 어수선함 속에서 엄마가 속 버무리다가 고무장갑 낀 채로 주시는 새빨간 배추 속을 뽀얀 배춧잎에 싸서 입이 미어지게 싸 먹는 쌈은 그야말로 핵 꿀맛이다. 식당에선 그런 정취까지는 자아낼 수가 없다. 그 맛만 느낄 뿐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다음 커서 이런 정겨운 풍경들을 추억으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내 나이쯤엔 김장문화가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추억을 찾아서 늙은 엄마를 찾아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김장이 끝나고 한참 지나서 아이들이 수육을 먹고 싶어 할 때가 있다. 절인 배추와 속 쌈이 있으면 좋을 텐데 배추는 절이는 데만 종일이다. 속 쌈으로 사용하는 배추는 알배추 부분만 사용하는 건데 속 쌈 먹자고 많은 배추를 절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럴 땐 싱싱한 겨울 알배추를 구입하고 비장의 새우젓 무침을 내놓는다.     



크리스마스 때쯤 가까운 지인들이 우리 집으로 모인다. 예전엔 치킨이나 피자 같은 음식들을 사 와서 파티를 했는데 요즘은 손수 만든 수육을 내놓는다. 김장 김치가 맛있게 익어갈 때쯤 이기도 하고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삶아낸 수육을 좋아한다. 기름기 있는 삼겹살, 식감이 좋은 목살, 담백한 앞다리 살을 섞어서 좋아하는 부위대로 먹으면 된다. 김장김치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새우젓 무침도 함께 말이다.     



무침용 새우젓은 크기가 큰 육젓을 사용한다. 젓갈 중 가장 비싼 편이다. 최상품은 1KG에 7~8만 원 정도다. 오젓이나 추젓은 크기가 너무 작아서 우려내어 새우만 사용하면 알맹이가 너무 없다. 살이 통통한 육젓이 제격이다.


우선 살이 오동통한 새우젓의 짜기를 빼야 한다. 그냥 사용하면 짠맛이 너무 강해서 물만 한 사발 들이켜게 된다. 맹물로 사용해도 되지만 다시마 육수를 사용해서 짠기를 두세 번 우려내고 우려낸 국물은 냉장고에 뒀다가 찌개용으로 사용한다. 살이 뭉개지지 않을 정도로 짜내어 갖은양념과 함께 무친다.      


나의 포인트 레시피는 다진 마늘을 많이 사용하는데 곱게 다지지 않고 알맹이가 보일만큼 성글게 다진다. 중국산 마늘은 매운맛이 강하지만 국산 마늘은 매운맛과 아린 맛이 그리 강하지 않다. 매운맛이 너무 강해서 싫으면 편으로 썰어 살짝 우린 다음 사용해도 되고 양을 좀 조절해도 된다. 맛의 핵심은 얇게 져며서 채친 생강이다. 생강채를 넣으면 향도 좋고 고급스러운 맛으로 변한다. 최대한 얇게 썰어야 한다. 아니면 생강 맛이 워낙 강해서 조화롭게 되지 않는다. 

여기에 송송 썬 쪽파와 참기름, 고춧가루 조금, 통깨와 함께 버무리면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새우젓 무침이 완성된다.



고기에 싸 먹어도 맛이 그만이지만 뜨거운 쌀밥 위에 먹어도 좋다. 강한 향신채들이 많아서 맵거나 아린 맛이 있을 것 같지만 양을 잘 조절하면 서로의 강한 맛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아이를 낳고 오랫동안 음식을 만들어왔다. 기본 반찬을 만들어가며 누구에게나 맛있는 맛이란 강하고 약한 것들의 적절한 조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상살이 또한 이 진리로 가득 차 있지만 역시나 찾지 않으면 눈엔 보이지 않는다. 조화로움은 이로움이 되어준다. 새우젓 무침 역시 입안 가득 맛있다 찬사로 압축될 만큼 작은 조합이 힘이 큰 아이로 변한다. 고기와 함께 먹는 새우젓은 잘 소화되도록 하는 이로운 아이다.

어쩔 땐 새우젓이 없어 무말랭이와 수육을 내놓기도 하는데 아이들은 역시나 무말랭이 무침을 좋아한다. 어른들은 모두 한 마디씩 새우젓 무침을 찾는다.     



시원한 국을 끊을 때도 새우젓을 사용한다. 콩나물 국이나 오징어 국은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것이 좋다. 가끔 라면을 끓일 때도 수프 양을 줄이고 새우젓을 넣기도 한다. 젓갈 중 비린맛이 적고 칼칼한 맛을 내는 아이라 즐겨먹는 국이나 찌개에 많이 사용한다.      



호박을 볶을 때도 새우젓으로 간을 한다. 여름이면 애 보박보다 크고 둥그런 조선호박이 나오는데 애호박보다는 단단하고 색이 짙다. 큼직하게 편으로 썰어 새우젓에 살캉하게 볶아내도 맛이 그만이다. 여기에 붉은 고춧가루를 첨가하면 초록 호박과의 색과 맛이 조화로워진다.     



음식을 만들 때마다 매번 놀라는 건 이런 이로움과 조화로움이 작은 접시 안에 고스란히 담긴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재되어 있는 음식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각자의 맛이 각각 느껴지는데 서로가 과함을 뽐내지 않는다. 맛을 내주는 음식과 즐기는 모두가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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