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 May 01. 2020

어쩌다 김치

여름이 온 듯하다. 이젠 따뜻하다가 아니고 덥다는 말도 살짝 나온다. 낮엔 볕이 너무 뜨거워 땀도 살짝 나온다. 이제 4월인데 여름이 오는 긴장감을 느낀다.     

과일가게에 갔더니 벌써 수박이 나왔다. 아직은 비싸긴 한데 벌써 나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작은 아이가 사촌오빠를 자꾸 찾아서 동서님께 작은 아이만 보내도 되느냐 연락했더니 어서 오라고 경쾌히 응해준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어느 집이든 아이들이 집에만 있는 통에 남의 집 방문하는 것도 참 민폐다. 고맙고 따뜻한 마음에 올해 처음 본 싱그러운 수박 한 통과 함께 남편 손에 아이만 보냈다. 고맙다는 카톡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난 이제 끝물이 다 되어가는 대저토마토를 한 봉지 골랐다. 일반 토마토와 다르게 겉껍질이 단단하고 짭조름한 맛이 난다. 부산 대저 지방에서만 수확되는 토마토라서 그 지역명 그대로 대저토마토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명 짭짤이 토마토라고도 불린다. 작을수록 최상급에 속하고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시어머님은 단단한 육질이 질기다고 표현하신다. 일반 토마토에 설탕 뿌려 드시는 걸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마트에 들려 오이도 몇 봉지 들고 왔다. 소박이 좀 담가볼까 하고 말이다. 나뭇가지마다 옹기종이 모여서 싹을 피우는 잎사귀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오이가 싱그러워 보였다. 



사시사철 나오는 채소이지만 봄이 되면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가격이 많이 저렴해진다. 여름 오이는 물이 많아지기 때문에 오이소박이는 여름 되기 직전에 사다가 만드는 것이 좋다. 5cm 정도 두께로 썰어 끝을 남긴 채 4등분 후 소금에 살짝 절인다. 오이가 절여지는 동안 부추. 당근, 양파 등의 재료들을 송송 썰어 김치 양념을 만들어 소를 만든다. 절여진 오이 안에 소를 얌전히 박으면 오이소박이가 완성된다.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채소들로만 만들어서 만들고 바로 먹어도 상큼하고 개운하다. 오이소박이 한다고 오이 한 보따리 씻어 놓으면 아이들이 서로 생오이를 먹겠다고 난리가 난다. 같이 모여 앉아 먹으면서 절이면서 소도 박아보고 익어가는 김치 맛도 상상해보기도 한다.      



대저 토마토로도 과일처럼 먹다가 좀 질린다 싶으면 겉절이 김치도 해 먹는다. 방법도 무척 간단하고 만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샐러드 김치다. 오래 두고 먹는 것보다 먹을 때마다 바로바로 무쳐 먹으면 좋다.  오이 대신 토마토를 넣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나머지 양념은 오이소박이의  김칫소처럼 만들어 버무려 무치기만 하면 된다.      

여름에는 고추들도 많이 나온다. 푸른 채소들의 천국이다. 맵지 않은 풋고추 배를 가르고 씨만 제거해 살짝 절인 후 오이소박이처럼 만들어 먹어도 별미다. 김치 육수를 만들어 부으면 물김치로도 좋다. 고추 안에 소가 얌전히 담겨 있기 때문에 물김치지만 흐트러짐 없이 먹을 수 있다.     



이런 맛김치들은 삼겹살 구워 먹을 때라든가 느끼한 음식과 제격이다. 입안이 헹궈지는 느낌이랄까. 토마토의 감칠맛이 폭발한다. 봄, 여름이면 오이, 토마토, 고추를 이용한 별미김치를 만들곤 하는데 남편은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남편은 겉절이 채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푹 익은 묵은 김치를 제일 좋아한다. 묵은 김치 중에서도 배추김치를 으뜸으로 좋아한다. 올 겨울에 김치 냉장고를 구입했다. 사려고 했던 건 전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구매하게 되었다. 김치 냉장고 덕에 집에 묵은 김치도 보관하고 이것저것 맛김치들이 쌓인다. 김치 요리가 많으니 두고두고 먹을 요긴한 보물 창고이다.  


   

2년 동안 직장 다닐 때 도시락을 싸고 다녔다. 입사 초반엔 힘이 들어 컵라면을 주로 먹거나 구내식당에서 먹었는데 몸이 더 쳐지는 듯하고 점심시간이 빠듯해 도시락을 챙겼다. 토마토 겉절이를 가져가면 모두 신기해했고 맛 또한 좋아서 아주 인기가 있었다. 큰 반찬통에 수북이 챙겨가도 샐러드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어서 남김이 없었다.      



토마토 특유의 상큼함이 참으로 좋다. 일반 토마토는 씨 부분이 시큼하지만 대저토마토는 신 맛이 적고 육질이 단단하다. 일반 토마토로 하면 씨 부분을 제거하고 만들면 씨들이 흘러나오지 않아 모양상으로 조금 더 깔끔히 만들어진다.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난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기보다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먹성 좋은 남편 덕에 이것저것 만들기를 서슴지 않아했고 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밥반찬 쪽에 고민이 많았다. 가끔 별미로 아이들이 밥이 아닌 다른 음식들을 원할 때가 있다. 스파게티나 스테이크 등 밥이 아닌 메뉴를 정해서 만들게 되면 다 먹고 나서 늘 밥을 찾는 남편 때문에 다시 식사를 차려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별미음식으로 식사를 차리는 경우는 많이 드물어졌고 반찬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던 것 같다.      




큰 아이는 뮤지컬 음악을 좋아한다. 방탄 소년단도 좋아하고 팝, 영화음악도 많이 듣는다. 영화음악 중에서도 레미제라블, 위대한 쇼맨처럼 뮤지컬로 상영되었던 영화음악을 특히나 좋아한다. 

얼마 전부터 TV 프로그램 중 더블 캐스팅이란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앙상블 배우(무명배우)들 중 1위를 선정해 뮤지컬 베르테르의 주연으로 발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을 즐겨본 아이는 순위보다 매주 배우들의 감미로운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 중 임규형이란 배우에 집중했는데 앙상블 배우라고 믿기 힘들 만큼 노래를 잘했다. 경연 중간중간 배우들의 인터뷰가 소개되었다. 임규형 배우는 노래에 대한 연습량이 많고 자기 계발에서 말하는 자기 미래의 명확한 암시가 뚜렷한 친구였다. 그래서 여러 장르의 노래를 변형해서 무대에 올리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탁월했다. 그의 실력을 다듬었던 긴 시간들이 가늠되었다. 많은 연습량이 있다 보니 어떤 미션이 주어져도 당당했다. 비록 최종 1위가 아닌 2위에 머물렀지만 그가 불렀던 노래들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건 절대적인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필요 이상의 연습량이었다.      



누구에게나 무엇인가를 처음 접하는 시절이 있다. 초짜의 시절이다. 초짜이기 때문에 실수를 눈감아 줄 수도 있는 시기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많은 기대가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 갓 결혼했다는 표시로 새댁이란 호칭이 주어지고 새로 입사한 사원에게는 신입사원이란 호칭을 두는 것도 실수를 해도 용인해 줄 수 있다는 무언의 허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약을 받는 가장 답답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가장 자유로운 시기이기도 하다. 배우는 시기다. 이 시기를 제대로 보내지 않고 흘려버리면 결정적 한방을 쏘아 올릴 기회마저 얻을 수 없다.

설사 운이 없어서 다른 분야의 일을 하게 되었다손 치더라도 변화에 대응할 의연함과 실력은 내재된다.       



신혼 초 시어머니께서 아들 사랑이 지극하셨던지라 김치며 밑반찬을 많이 해주셨다. 손이 빠른 어머니는 몇 가지 반찬도 단숨에 만들어내는 금손이었다. 해주시는 음식 먹을 땐 참으로 편하고 좋았는데 다 먹고 나면 할 줄 아는 음식이 없어서 많이 암담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처럼 음식을 만들고자 했지만 다듬는 과정에서 벌써 많이 지쳤다. 만드는 시간보다 다듬고 썰어서 조리 전까지 재료 손질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정적으로 맥이 빠지는 건 그 손맛이 안 났다. 현명하셨던 시어머니께서는 그런 며느리가 기특했는지 맛있다 해주시고 다음에는 이런 부분만 더 신경 쓰면 더 맛있게 되겠다 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는 딸아이의 매일 같은 투의 투정이 들린다. 표현은 다 다르지만 망쳤다는 말이다. 그림에 대해서 잘 아는 바가 없지만 이젠 아이의 귀여운 투정을 받아줄 수 있는 심적 여유로움은 생겼다. 이 허튼 시간이 약이 되는 시간임을 알기에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밥 좀 지어 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