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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May 04. 2020

새우젓 찌개라면.....


남편과 두 딸들은 참으로 고기반찬을 좋아한다. 생선도 좋아하긴 하지만 씹는 식감 때문인지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더 좋아한다. 맛과 식감, 향이 많이 다르니 조리방법도 조금씩은 다르다. 아이들이 색다른 반찬을 찾는다는 건 고기반찬 없냐는 말과 같다. 고기반찬이 며칠 없으면 내 상차림이 좀 허술하게 느껴질 정도다. 단골 정육점에 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사 왔다.    

 

어릴 적 엄마가 많이 해 주신 음식 중 하나가 새우젓 찌개였다. 재료도 너무 간단하고 좋아하는 고기양이 많아서 늘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지방 음식인 줄은 모르겠는데 경상도 분이신 시어머니는 처음 보신다고 하셨다. 가끔 집에 오시면 대접하곤 하는데 찌개에 들어간 두부가 맛있다고 밥에 잘 비벼드셨다.     


육수를 끊여내어 새우젓을 육수에 잘 풀어낸다. 육수에 어느 정도 간이 되었기 때문에 많이 넣으면 짜지기 십상이다. 간을 보면서 맞춰야 한다. 간간해진 밑국물에 돼지고기를 팔팔 끊이다가 애호박과 두부만 첨가하면 된다. 마늘과 대파도 추가하고 말이다. 너무 간단해서 국물요리를 갑자기 찾을 땐 휘리릭 끊여낸다. 지리로 맑게 끊여도 좋지만 매운 청량 고춧가루를 첨가해 혀가 얼얼해지도록 먹어도 그만이다. 남편은 지리보다는 얼큰하게 끊여낸 찌개를 더 좋아한다. 새우젓 국물에 두부를 넣으면 딱딱한 두부가 순두부처럼 변한다. 같이 첨가한 고기도 부드러워진다. 새우젓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성분이 나오는 것 같다. 수육이나 족발을 먹을 때 새우젓과 함께 먹는 것도 맛있는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과학적 진리도 숨어있다.    

 

친정에서는 제사가 참 잦았다.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있었고 제사음식들이 거의 떨어질 날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부침개나 전류 등은 말이다. 부침개를 볕에 꾸덕꾸덕하게 말려두시기도 했다. 새우젓 찌개에 말려 놓은 부침개를 넣어 먹어도 참 별미였다. 순두부처럼 흐늘거리는 두부도 그렇고 말린 부침개들이 국물에 적셔져서 쫀득해지다가 부드러운 맛이 된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런 전 찌개는 경기도 토속음식이라고 한다. 경기도 분이신 아버지 덕에 어렸을 적 제사를 지내고 나면 으레 새우젓 찌개를 하고 전 찌개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른 아침 외출할 일이 있을 땐 휘리릭 끊여놓기도 한다. 남편은 오후에 출근을 해서 오전엔 잠을 잔다. 빠르게 끊여낼 수 있는 음식이긴 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좀 들여 끊여내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나가기 전 한소끔 끊여내고 먹을 때 다시 끊여 먹으라고 일어둔다.

남편이 특히 좋아하는 찌개라 한 솥 끓여놓고 나가도 바닥을 보일 때가 많다.      




아이 낳고 10년 넘게 살다 보니 연애 때의 그런 애틋함은 없어졌다. 연애 기간까지 합치자면 20년도 넘게 같이 지냈으니 이젠 어느 정도 서로에게 맞춰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우리 둘 다 곰살맞게 애교가 있는 성격은 아니라 서로에게 표현하는 방식이 서툰 편이다. 남편은 우르륵 화를 냈다가도 언제 그랫냐는 듯 풀어지는 성격이었는데 나이가 들었는지 이젠 화가 금방 누그러지지 않을 적이 많다. 나 또한 열이 뻗쳐 죽겠다 싶다가도 나가서 애쓰는 사람 생각에 좋아하는 찌개와 나물반찬 몇 가지 무쳐놓는다. 아무 말 없이 소박하게 한 상 차려내면 주섬주섬 얘기를 시작한다. 우리 부부의 화해 방식이다. 맛있다 얘기 한 번 해주면 좋으련만 무뚝뚝하게 먹기만 한다. 한 상 다 비워내는 것이 내 화가 풀렸소라는 뜻을 알기에 그냥 모른 척 넘어간다.      


새우젓과 고기처럼 합을 잘 맞추고 사는 부부들이 참 부러운 적도 많았다. 불같은 시아버님의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남편은 얘기를 잘해 나가다가도 우르르 쏟아내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속에서 천불이 날 때 꼭 이런 지인에게 연락이 온다. 곰살맞은 남편 얘기하는 친구 말이다. 쓴웃음을 지어 보이고 바쁜 핑계를 대어 대화를 마무리한다. 왜 우리 집 남자는 남의 집 남자 같지 못할까라는 망상과 질투 같은 감정에 휩싸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또한 한 살 두 살 늘어갈 때마다 굳세어라 금순이가 되어간다. 아이를 둘이나 키웠고 자칭 내공이라고 하지만 억척스럽게 되어가는 것 같다. 남편은 살랑이는 바람 같은 와이프를 원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살랑살랑 살고 싶지가 않다. 나도 내가 편한 대로 살고자 하니 남편만 탓할 수는 없겠다.      

세상에 무언가 딱딱 들어맞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랴.


내가 속으로 낳은 두 아이들도 이리 다를 수가 없는데 말이다. 합이 맞춰지게끔 각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더 많을 듯하다. 남편이 알아서 해주겠거니 하는 헛된 감정은 묻어버린다. 

알아서 안 해주니 서운해하는 감정도 말이다. 대신 “이것 좀 도와줘.”라든가 “이건 당신이 했으면 좋겠어.”라는 정확한 이야기로 내 의사를 표현한다. 이렇게 직설적 표현에 능해야지만 나 또한 상처를 덜 받기에 그렇게 되어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아줌마들은 늘 당당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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