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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 May 06. 2020

응원한다 불고기

아침 8시...

우리 집 15살 큰 아이에게는 새벽 같은 시간이다. 학교에 등교할 때는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일 시간이지만 주말이나 지금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엔 아이가 깨어있기 불가능한 시간이기도 하다. 자퇴를 스스로 결정한 아이는 며칠간 새로운 판을 짰다. 1년 동안 중학교에 다녔지만 중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단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간이었나 보다. 친구들 모두 영어, 수학을 위해 학원으로 간 사이 아이는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찾아냈다. 어미 눈에 그저 노는 것으로밖에 안보였지만 그 노는 과정이 스스로의 길을 찾는 방법인 줄은 몰랐다.      



그 스스로의 길을 찾는 일이 내 아이에겐 매일 손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일이었다. 매일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로 만들고 오리고 부치는 일들을 지겹도록 반복했다. 어쩔 땐 무언가를 기르고 싶어 했고 그 덕에 대 여섯 가지 식물들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식물에 대해 관심은 줄 뿐이지만 그 관리는 순전히 나의 몫이다. 어떤 아이는 햇볕을 좋아해 베란다에서 키워야 하고 어떤 아이는 물을 좋아해 매일 물을 주어야 한다. 내 아이들처럼 모양도 취향도 각기 다른 아이들이다. 다만 다른 건 스스로의 움직임이 없을 뿐이다.    


 

중학교 아니 그 이전부터의 놀이는 아이 스스로의 결정권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놀이로 인해서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하고 싶은지에 대한 욕망을 채워나갔다. 남들에겐 이 과정들을 나는 매일 놀기만 해라고 표현했다. 사실 그러하니까... 눈만 뜨면 놀거리를 찾는 아이였고 사춘기가 되기 전까진 잠도 안 자가면서 놀았으니까 말이다. 놀면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해 나가고 원하는 것들을 채워나갔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다녔던 서점은 코로나로 인해 많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좁혀질 때도 있다. 아이들을 제가 가고 싶은 코너에 우선 풀어놓고 나대로 여기저기 기웃거려본다. 어느 코너에 가더라도 나를 주제로 삼은 책들이 즐비하지만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남의 이야기로 단지 위로만 받을 뿐이다. 작가란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서 풀어놓는 사람이다.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한 생각을 풀어나야 하기에 그 생각 한쪽 귀퉁이가 나의 삶과 매칭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흔이 넘은 난 나이에 걸맞은 많은 경험들이 제법 많이 생겼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고통일 때도 있었고 행복할 때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건 이 경험들이 나를 완성해가는 과정들이라는 것이었다. 몇 천년 전 아폴론 신전 앞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나이지만 내가 아직 모르는 구석들이 많다. 어떤 문제를 마주쳤을 때 알지 못했던 내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나 자신을 파악한다는 건 번듯한 대학 졸업장이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해도 많은 위기들을 순간순간을 넘기더라도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될 때를 직면하기도 한다. 많은 경험이 있지만 경험 안에 담을 수 없는 내가 존재했다. 실타래는 있는 대로 꼬여서 풀어낼 재간이 없었다. 그나마 느지막이 책을 만나서 깨닫게 되었고 글쓰기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방법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일반 아이들과 다른 경험을 맞이한 큰 아이는 살짝 들떠 있는 면도 있다.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이 보이긴 하지만 탄탄히 다져진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인 건 확실하다. 중간중간 위기도 있겠지만 많은 시간을 나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깨닫는 시간이 많았으니 판을 짜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의 방향성을 알게 되었고 당분간은 자신이 하고픈 것을 못하더라도 참아내는 시간을 선택했다.      



주변에 아직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 주변의 큰아이에 대한 시선은 학원을 다니지 않고 그냥 무작정 많이 노는 아이로 점 찍혀 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은 환영하지만 이렇게 무작정 노는 것만 환영하는 어른들은 없었다. 아이가 깊이 고민하는 부분들은 공유되기가 어려웠다. 겉으로 보이는 시선만 존재할 뿐이다. 설사 공유가 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학원을 열심히 다녀야 한다는 결론뿐이었다.     


 

아직은 아이도 그렇고 어떤 틀만 선택해 놓은 거라서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선 부딪혀야 한다는 것만 확실할 뿐이라서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시어머님께도 시동생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상의 차 말을 꺼낸 모양이다. 돌아오는 반응들은 다 싸늘했다고 한다. 무모한 짓이라고 말이다.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마이기에 아이 편에서 되는 방법들을 찾아가려고 한다.      




오늘 저녁은 아이가 좋아하는 불고기를 해 줄 생각이다. 남편이나 아이들이나 바싹 구운 불고기보단 촉촉한 국물 불고기를 좋아한다. 배 하나를 강판에 갈아서 면포에 거른 후 양념과 섞어 쓰는데 요즘에는 배도 좋지만 한창 나오는 참외를 갈아서 쓰기도 한다. 참외 또한 불고기와 어우러짐이 좋다.      



봄에 나오는 연한 미나리로 만든 김치


짜지 않게 슴슴히 만들어 국물과 비벼먹어도 좋고 풍성히 올린 파채와 같이 먹어도 그만이다. 파는 불고기가 완성되어 완성 접시에 가기 직전 넣어 매운맛만 날리고 고명처럼 담아내는 것이 좋다. 고명과 다른 건 올려진 파 양이 좀 많다는 거다. 파향이 고기와도 잘 어울리고 달큼하고 아삭한 맛이 고기 맛을 한층 업그레이드한다. 몇 가지 쌈채소와 된장소스, 같이 곁들여 먹을 햇양파, 아삭이 고추, 오이도 곁들일 생각이다. 향이 좋은 미나리 김치와 새콤한 오이무침도 곁들임 음식으로 생각했다. 상상만으로 즐거워지는 상차림처럼 아이도 자신의 미래를 상상 중일 것이다. 생각처럼 잘 풀려나갈 때도 있지만 어긋나는 수도 있겠지. 홈메이드 집밥처럼 내가 먹는 메뉴를 선택하고 안되면 다시 만들어가는 것들을 반복하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완성체의 무언가도 만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요리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배를 채우는 한 끼의 때움일 때도 있겠고 아플 때 맞는 주사 같은 처방전일 때도 있었다. 남편과 부부싸움 후 화해의 한 상차림일 때도 있고 말이다.      


오늘 상차림은 허기진 배의 채움만이 아닌 격려와 서투른 엄마지만 늘 너를 생각하고 응원한다는 마음을 듬뿍 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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