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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장 박원순 Mar 27. 2018

꼰대는 스스로가 꼰대인지를 모른다

에필로그_몰라서 물어본다

꼰대는 스스로가 꼰대인지를 모른다


처음 출판사와 만나서 <몰라서 물어본다> 기획에 대한 회의를 할 때 편집자는 내게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도 된다고 했다. 전문편집자가 준비하는 질문이 아닌 ‘박원순만의 시선’으로 질문을 해 달라고 했다. 의아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재의 감성으로 세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라고 했다. 편집자는 요즘 청년들의 생활이나 생각을 기성세대들의 눈높이에서 관찰하고 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는 시도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시도가 마음에 들었고, 나조차도 억지로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그러니 알려달라고 말하는 게 솔직하고 편한 것 같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신 편집자는 딱 두 개의 질문만은 빼놓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마무리처럼 진행을 해달라는 요구까지 함께. 


당신에게 서울이란?
당신에서 박원순이란?



하나는 인터뷰이들이 각자 서울에 대해 느끼는 인상이나 느낌에 대한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터뷰를 마친 뒤 나에 대해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을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서울시장이 인터뷰이들에게 서울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어색할 것이 없었지만, 뜬금없이 상대를 눈앞에 두고 내가 어떤 사람 같은지 말하라고 하는 것이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사실 사람 앞에다 놓고 누가 솔직히 나쁜 이야기들을 하겠는가? 당연히 칭찬만 하고 말테고 그럼 뻔한 답변만 나올 텐데 굳이 이걸 해야 하는 것인지 반문을 했지만 자신들을 믿고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답변을 듣게 되면 왜 그 질문을 하게 했는지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바쁜 일정 속에서도 퇴근 후에 젊은 전문가들을 만났고 격식을 차린 인터뷰가 아닌 마을 평상에 두런두런 앉아서 수다 떠는 것 같은 기분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간과했던 것들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까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이차를 떠나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엿보는 재미도 함께 얻었다. 무엇보다 인터뷰이들이 남긴 나에 대한 정의들을 모아 보면서 그들의 발언의 기저에는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편집자는 내게 이걸 알게 해주기 위해서 그토록 민망한 질문을 시켰던 것이다. 몇 명이 남긴 정의를 보면,  


“워낙 높으신 분이라 마냥 어렵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까 ‘이런 분이 서울시장이라서 안심된다’는 생각을 했다.” _김시현

“평소 정치인이 보이는 소탈함은 쇼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_신상훈

“시장은 한성판윤, 무려 정 2품! 그리고 천만 시민을 살펴야 하니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사람.” _무적핑크

“시장은 내게 ‘세상이 많이 달라졌구나’를 느끼게 해준 사람. 시장이 기업가가 아닌 문화예술인을 만나는 것을 보고.”  _DJ소울스케이프


그렇다. 그들의 눈에는 박원순이란 정치인은 이미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이며 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란 가정이 이미 깔려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아직 열정을 갖고 뛰어다니는 청춘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미 사람들의 눈에는 최장수 서울시장이며 유명 정치인 중 하나였다. 


인권변호사 시절이나 시민사회 운동가 시절부터 함께 동고동락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동료이자 이웃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나 역시 그들과 소통이 안 되는 ‘꼰대’로 보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기사를 보니 ‘꼰대는 스스로가 꼰대인지를 모른다’는 말이 있었다. 어쩌면 그 말이 지금의 나를 가리키는 말은 아닐까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게 됐다. 혹시 내 기준에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는 않았던가? 그리고 그걸 강요한 적은 없는가? 사실 급식체 좀 안다고, SNS에 글 올릴 줄 안다고 꼰대가 아닌 게 아닌데. 


사실 급식체 좀 안다고,
SNS에 글 올릴 줄 안다고
꼰대가 아닌 게 아닌데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해서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것만 한다고 해서 시장으로서 의무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현실적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공동체를 복원하고 각자도생이 아닌 사회적 우정을 바탕으로 내 옆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공동체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꼰대가 아닌 ‘선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청년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자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조금 나이는 많지만 잘 통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기 전에 그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삶에 대해 우선 열심히 듣고자 한다. 내 기준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다양한 행복과 삶에 대해서 들어보고자 한다. 사회적 우정을 바탕으로 한 친구 관계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대상으로서,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그들은 참여를 통해 성장하고 더 올바른 내일로 나아갈 것이고 그 때 선배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동안 얻어 온 삶의 지혜와 경험들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나 역시 그들에게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열심히 듣고자한다
그리고 기회를 주고자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해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쏟아질 것이다. 이번 인터뷰도 사실 그랬다. 낯선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는 우리 세대와는 다른 행복과 성공에 대한 인식이 있었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질문을 했다. 완벽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깨달은 바가 있다. 모르면 물어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충 알고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물어볼 때 사회적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시작이 되고 선배를 넘어 친구가 되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인터뷰이 & 인터뷰어 소개

* 아래 영상이 원활히 보이지 않는 분은 유튜브 계정(클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지코, 아이돌 그룹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실력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뮤지션


2. 씬님, 대한민국 최정상의 뷰티크리에이터


3. 김시현, 1분만에 촬영예약이 마감되는 사진관 <시현하다.>의 포토그래퍼


4. 진경환, 족보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72초>의 감독이자 배우


5. 아방,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바탕으로 팬덤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


6. 신상훈, 데이팅 앱 <아만다>를 만든 청년 CEO


7. 기남해, 피티 워모에서 주목받은 패션 브랜드 <바스통>의 디자이너


8. DJ소울스케이프,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대한민국 최고의 DJ


9. 무적핑크, 창의적인 시선과 탄탄한 스토리로 사랑받는 웹툰계의 대표 작가




4월 3일에는 <몰라서 물어본다> 북토크, '만나서 물어본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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