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소설
김동완
”늦은 시간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곡은 더 넛츠의 사랑의 바보. 내일 또 봐요. “
그의 인사가 끝나고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수는 술 한 잔 사달라는 간절한 노래였다.
사랑?
모르겠다. 그게 정말 사랑인지, 지켜보는 게 어떻게 사랑인지.
내가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건 사랑, 그것도 질투에 의해 시작됐다.
그녀와 함께 진득한 사랑을 나누고 같은 침대에 누워 TV를 보는데 그가 나왔다.
김동완.
그녀의 입에서 동완이 오빠다.라는 짧은 외마디 환호성이 나왔다.
뭐야.
시큰둥하게 되물었지만 대꾸도 없이 방송만 보는 그녀.
“너 김동완이 좋아? 내가 좋아?”
그 유치한 질문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의 난 조금 더 쿨하고 멋진 남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그 결과는 참담했다.
“뭐야? 지금 고민하는 거야?”
“유치해.”
“그럼 대답하면 되잖아. 나야, 김동완이야?”
그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고 그대로 어색한 침묵만 흐른 채 모텔을 나섰다.
평소였다면 한 번의 사랑을 더 나누었을 텐데, 젠장.
그 이후로 김동완이란 가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가 나오는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그녀 몰래 그 영화를 보기도 했다.
대박.
정말 재미없어.
영화관을 나오면서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기분이 좋았다.
“너 돌려차기 볼래?”
“아니.”
“왜? 김동완 나오잖아?”
“뭐야, 유치하게 아직도 신경 쓰는 거야?”
“네가 좋아하니까 같이 봐주려는 거지.”
“됐거든요.”
“영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저녁만 먹고 일찍 들어가자, 피곤해.”
“알았어.”
저녁은 싱거웠고 기분은 김 빠진 콜라처럼 맹맹했다.
밤 열 시 김동완의 라디오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귀에 거슬리는 하나의 사연.
“남자 친구가 오빠를 의식하기 시작해요, 전 어떡해야 할까요?”
김동완은 사연이 끝나자 웃기 시작했다.
맑고 경쾌하게.
하지만 난 경쾌하지도 기분이 맑지도 않았다.
더더욱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김동완이 그에 대해 답을 말했다.
정확하고 또박또박 한 치의 노이즈도 없이 내 달팽이관으로 그의 음성이 꽂혔다.
후아.
자존심이 상했다.
만나지도 만질 수도 없는 그란 존재에 패배감을 느꼈다.
그렇게 그녀를 떠나보냈다.
나와 하나님 중 누굴 사랑해라고 했을 때 고민 없이 나를 선택하는 사람이 내게 필요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열렬히 사랑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시간이 가도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주는 사랑이 늘 상대방에 비해서 더 컸고 그 이상의 사랑이 돌아오진 않았다.
그게 내 착각일 순 있겠지만 결과론적으론 늘 내 생각이 맞았다.
내가 헤어지자는 말에 단 한 명도 싫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 연애사는 늘 한 명의 가수이자 배우로 인해 시험받게 되었고, 그 시험은 끝내 해결되지 않은 채 나만의 숙제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친구가 소개팅을 시켜줬다.
소개팅은 진짜 인연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나에게 새로운 인연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내게 다가왔다.
인연, 연인
두 글자의 단어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마주할 때 진짜 사랑이 올 수도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간단한 인사 몇 마디를 카톡으로 주고받고 나자 가슴 한 구석에 숨겨져 있던 설렘이 석류처럼 톡톡 터져 나왔다.
처음 만나면 무슨 말을 하지?
어떻게 인사를 하면 좋을까?
연애를 안 한 지 오래돼서 연애세포가 다 죽은 건 아니겠지?
약속 날이 다가올수록 다양한 시나리오가 쓰이고 그에 대한 액션과 대사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소개팅 당일.
한껏 차려입고 약속 장소를 향했다.
블로그에선 모던한 분위기가 있다고 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뭔가 오래된 그래서 조금은 낡은 뜻한 카페가 다소 낯설었다.
그렇게 오분, 십분 약속 시간을 앞두고 오디션을 준비하는 배우처럼 다양한 인사를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제가 좀 늦을 것 같아요."
그녀의 카톡에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던 심장이 금방 가라앉았다.
"괜찮습니다. 저도 이제 막 도착해서요."
차라리 늦는다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 컵의 물을 다 마시고 다시 두 번째 컵의 물마저 비웠을 때 그녀가 내게 왔다.
"혹시 오늘?"
"아, 네. 민정 씬 가요?"
그녀는 수줍게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녀가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기계적인 시스템에 맞춰 주문을 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그녀는 인터뷰어처럼 내 다양한 질문에 준비된 사람처럼 열심히 답하고 열심히 먹었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러게요. 한 군데에서 이렇게 오래 앉아있긴 처음이네요."
"그러세요?"
"혹시 괜찮으시면 제가 집에 바래다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녀가 잠시 머뭇거린다.
서늘하게 스치는 불안감.
"집은 좀 그렇고 버스정류장까지는."
"아, 네. 그렇죠, 처음 만나자마자 집은."
내가 더 당황하자 그녀가 후훗 하고 웃었다.
날 보고 저렇게 귀엽게 웃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드디어 내게도 사랑이 오는구나.
몇 걸음 걷지도 않은 듯한데 벌써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평소 지키지도 않던 버스가 제 시간보다 도리어 일찍 오고 있었다.
"저 그럼 이만 가 볼게요."
"네, 오늘 즐거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네, 저도요."
그녀가 떠나고 그 자리에서 설렘과 두근거림을 만끽했다.
눈 앞에 신화의 콘서트 포스터가 지나가기 전까지.
"김동완?"
순간 그녀에게 한 가지를 꼭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오는 택시를 타고 그녀가 탄 버스를 따라갔다.
그리고 버스에 내리는 그녀에게 인사했다.
"여긴 어떻게?"
"아,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리려고."
"저 이거 이상하게 듣지 마시고 진지하게 답해주세요. 제가 징크스가 있어서 그래요."
"징크스요? 그게 뭔데요?"
사뭇 진지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김동완 좋아하세요?"
그녀의 눈이 커지며,
"누구요? 김동완이요?"
하고 되물었다.
"네, 연예인 김동완이요."
"아니요, 전혀 관심도 없는데. 왜요?"
"아닙니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다음에 만날 때 알려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연신 궁금한데 지금 알려주면 안 되요? 를 두 번 하고 나선,
"다음번에 꼭 만나야겠네요. 궁금해서라도."
라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신화의 포스터가 달린 그 버스에서 내일의 사랑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동완이 말했다.
"사랑하세요. 할 수 있을 때 지금 마주한 그 사람과."
생각보다 괜찮은 형 같다.
키워드 소설 : 저 개인적으로 소설 습작하는데 키워드가 있으면 그걸 모티브로 해서 글 쓰는 연습을 하고 있어 키워드 소설이라 명명합니다.
이번 작품 키워드 : 라디오, 추억, 사랑
좀 더 재미있게 다음 소설이 보고 싶다면 키워드를 댓글에 남겨주세요.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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