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적긁적
안녕.
잘 지내지?
내가 얼마 전에 겪은 일을 얘기해줄까?
아니라고 해도 넌 읽어야 해.
왜냐하면 편지를 쓰는 건 순전히 내 마음이니까. (고마운 줄 알아라.)
너도 알 거야.
우리 학교 가는 지름길에 있던 빈 공터 말이야.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 길을 걸었어.
언젠가부터 쓰레기가 버려지더니 하루가 다르게 쓰레기가 쌓이더라.
그러다 결국 그 길을 걸을 때면 악취에 코를 막고 걸어야 할 정도가 되었지 뭐야.
게다가 여름 장마까지 오는 바람에 쓰레기가 길바닥에 날리고
냄새도 더 심해져서 며칠 동안은 멀리 돌아서 학교에 갔어.
그러다 하루는 늦잠을 잤지 뭐야.
늦었다 싶어서 지름길로 냅다 뛰는데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가 그 빈 공터 앞에서 숨이 턱 막히는 거야.
코를 막으면서 숨을 헥헥 되는데...
그 지저분한 쓰레기 사이로 꽃이 보이는 거야.
노오란 민들레꽃이 말이야.
알지?
내가 민들레꽃 좋아하는 거?
뭐랄까?
그때의 심경은 생명의 신비랄까 아니 자연의 위대하다 뭐 여하튼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
그리고 결심했지.
이 지저분한 쓰레기를 치우고 꽃을 심어보자고.
그래서 등하교 시간에 틈틈이 청소를 하기 시작했어.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은 분리수거해가면서 말이야.
그러자 동네 주민 분들도 좋은 일 한다면서 일손을 거들어주시더라.
하루가 다르게 공터는 깨끗해졌고 어느 정도 치워졌다 싶어서 주말에 꽃을 심었어.
며칠간 지켜보던 동네 분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심어도 되냐고 도리어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그때의 기분이란, 넌 평생 모를 거야.
그리고 며칠이 안돼서 세상에서 둘도 없이 예쁜 지름길이 생겼지.
아마도 네가 이 곳에 있었다면 정말 좋아했을 거야.
그리고 그 말 기억나?
"내일이 기대되는 건 오늘이 있기 때문이야,
어제와 다른 오늘을 시작했으니까."
옛날에 네가 나한테 그 말했을 때는 정말 손가락이 오그라들었었는데.
이제야 그 말뜻을 알겠어.
나 오늘 또 재미난 일을 시작할 거야.
그래야 내일이 궁금할 테니까.
좋다.
또 하나를 배우고 또 하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고마워, 그리고 보고 싶다.
다시 만날 그 날을 기약하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