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글적긁적
바쁘던 일상이 한가로워질 때면 전화기에 손이 간다.
주소록을 눌러 이름순으로 하나하나 내려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추억이 떠오른다.
'나쁜 놈'도 있고 '이상한 분' 도 있고 '좋은 선생님.'도 있다.
그러다 가끔 왜 저장했을까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주소록이 풍성해지는 효과를 주는.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그냥 툭하고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평소 전화 울렁증으로 전화를 기피하는 내가 마법에 걸린 듯 전화번호를 누른다.
한 달 만이든 삼 년 만이든 십 년 만이든.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시간이 오래될수록 전화를 걸 때의 호기는 전화 신호음을 듣는 순간 갈등의 기로에 선다.
세 번쯤 신호가 울렸을까?
'바쁜가 본데 끊자.'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신호음이 익술 해질 때쯤엔 초조함은 사라지고 그 불안감과 어색함을 이겨낸 성취감을 얻는다.
'난 전화를 했어, 비록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
얼마 전에 옛 직장을 지나다 근 삼 년 만에 통화가 된 선배가 있었다.
선배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었고 나 역시도 잘 지내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는 삽시간에 끝났고 짧지만 긴 침묵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통화가 끝난 후 삼 년이란 시간만큼 서로의 거리가 멀어졌음을 느꼈다.
시간의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가.
그리고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지만 아마도 다시 보진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추억의 소환도 내일의 만남도 그 짧은 안부 전화로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기에.
오늘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지내온 이야기를 듣고 그의 이름을 적는다.
'근성의 승부사 000 사장님'
휴대폰 주소록에 또 한 사람의 앨범이 저장됐다.
전화를 걸기 전까지 펼쳐볼 수 없는 안부란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