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막내랑 한바탕 투닥거렸다. 용돈을 벌써 다 써버렸다기에 내 목소리 톤이 높아졌나보다.
"벌써 다 썼다고?"
그랬더니 막내는 왜 나에게 화를 내냐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낸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본 거라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자꾸 화만 내고 그러니까 엄마를 닮아 내 성격이 이모양이라며 한술을 더 뜬다. 자려고 덮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앉았다. 울화통이 터져서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너는 엄마를 이겨 먹으려고 드냐? 엄마가 물어볼 수도 있지!"
"화를 내지 말라고! 그렇게 화를 내면 역효과 나는 거 몰라?"
이제 나를 아예 가르치려 든다. 순간 나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면서 더 화가 치민다.
오십 중반을 넘어서는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야단을 칠 때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쳐가며 끝까지 어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중간에 끼어들기라도 하면 말대꾸한다고 또 날벼락을 맞을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야단맞는 거는 당연한 결과라 여겼다. 내가 잘못했기에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화를 내는 것 또한 마땅한 일이라 생각했다.
한 십 년쯤 전인가 부모교육 시간에 자녀 양육 방법에 관해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내용을 쭉 읽어보면서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용인즉슨 아무리 화가 나도 아이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감정을 억누르고 평온한 상태에서 자녀의 행동의 잘못된 점을 말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타이른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지? 부모가 아니라 부처가 되라는 거네! 일축해 버리고 별로 신경을 안 썼다. 그리고는 나만의 육아법으로 쭉 욱 엄마(욱하기 잘하는 엄마)로 아이 셋을 키워냈다.
요즘엔 금쪽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오0영 박사의 말이 유튜브나 책을 통해 전파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욱하기를 잘하면서 화를 내며 야단치는 육아법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막내도 알아버렸던 것이다. 매 분기마다 나가는 자녀와의 대화법에 관한 가정통신문 덕분인지 가정 시간에 선생님께 배운 '나 대화법' 때문인지 막내는 내가 화내는 것을 못 견뎌한다. 내가 화를 1이라도 내기 시작하면 막내는 10으로 받아치면서 화를 낸다. 그리고는 오늘처럼 엄마를 닮아서 성격이 이 모양이라는 토를 꼭 단다. 이럴 때마다 내 가슴은 타들어가면서 간혹 머리꼭지가 돌아버리는 불상사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교사가 된 후 수업 기법에 관한 연수를 들으면 반복해서 듣는 말이 있었다.
"선생님은 자기가 배운 대로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 세대는 육칠십 명이 넘는 학생들을 한 교실에 욱여넣고 선생님의 지휘봉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일제식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 이렇게 자라난 우리들이 교사가 되었을 때 같은 방법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려는 우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한 연찬과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연수의 핵심 내용이었다.
부모가 되는 것도 교사가 되는 것과 닮은 점이 있다. 내 부모가 했던 방식 그대로 내 자식들을 대한다는 공통점이다. 폭력으로 키워진 아이들은 커서 부모가 되었을 때 또다시 폭력을 아이들에게 행사하게 된다. 나는 커서 저런 부모가 되지 않아야지 하면서 나도 똑같은 부모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직면할 때 섬뜩해진다. 그래서 남편감을 고를 때는 시아버지 될 사람을 보라고 했던가? 우리는 우리가 자라온 환경을 쉽게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때는 부모 자격증을 줘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말이 무색하게 요즘에는 출생률이 낮아 자식을 낳는 것만으로도 애국자가 되는 세상이다. 귀하게 얻은 아이인 만큼 부모 되는 것도 공부와 수양이 필요하다. 나는 어릴 때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하면서 라떼를 외치다 보면 바로 꼰대 부모가 되어버린다. 요즘은 막내에게 말할 때 항상 일정한 톤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감정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랬더니 어제는 신기하게도 막내가 이렇게 말한다.
"엄마, 불효를 용서해 주세요!"
아이들도 엄마가 참아내는 만큼 쑥쑥 성장해 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