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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둥맘 Jul 16. 2020

왜 엄마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해?

고구마 줄기 볶음

며칠 전 농산물 직매장에 가보니 고구마 줄기가 매대에 잔뜩 누워있었다. 지금이 제철인가 보다. 저번에 한 봉지를 사서 요리를 했더니 게눈 감추듯 없어진 아픈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두 봉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고구마 줄기 볶음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겉껍질을 한 겹 벗겨주어야 한다. 그리고 끓는 물에 데쳐서 물기를 짠 다음 뽁아 주어야 한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싫다면 요즘 마트에서 파는 삶아서 파는 고구마 줄기를 사서 요리하면 된다. 그런데 직매장에서 사 온 생고구마 줄기로 요리를 했더니 아삭아삭한 것이 삶아서 파는 거에 비할 데가 못되었다. 


저번에는 나 혼자만 아껴 먹을 생각으로 한 봉지만 사 왔다. 껍질을 벗기고 삶고 다시 볶는 과정이 귀찮아서 냉장고에 한 일주일을 방치했다. 그러다 어~~ 냉장고 서랍을 열었더니 생생했던 고구마 줄기가 흐물흐물 한 귀퉁이는 노랗게 색이 바래고 있었다. 이러다간 봉지째로 버려야 할 지경이 될 것 같았다. 얼른 꺼내서 고구마 줄기 긴급 구출 작전에 돌입했다.


색이 바래거나 벌써 흐물흐물해진 부분은 떼어내고 겉껍질을 벗겨냈다. 그랬더니 한 봉지 가득이었던 고구마 줄기가 애개 한 움큼밖에 남지 않았다. 진작 해 먹었어야 하는데. 이놈의 게으름 때문에 아까운 녀석들을 많이 버리게 생겼다. 그리고는 얼른 끓는 물에 데쳐냈다. 알맞은 크기로 자른 다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맛간장 두 스푼, 물엿 한 스푼을 넣어 볶아냈다. 나는 흐물흐물한 맛을 좋아해서 고구마 줄기의 숨이 약간 죽도록 푹 볶아주었다. 여기에다 들깨가루와 물을 조금 부어서 조려주어도 감칠맛이 난다. 오늘은 귀찮아서 패스! 상해서 버리는 게 많아서 그런지 한 접시가 겨우 나왔다.

음~~ 이 환상의 맛이라니!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간장의 짭조름함과 물엿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단짠의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어냈다. 거기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까지 가세하니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다음에 먹을 요량으로 아껴두었다.


그런데 아니~~ 큰애와 막내가 달려들었다. 무서운 속도로 젓가락질을 해대더니 홀라당 내가 아끼는 고구마 줄기를 다 먹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야! 왜 엄마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는데?"

"엄마가 아껴 먹으려고 놔둔 건대! ㅠㅠ"

애들은 엄마의 하소연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애들은 고기반찬이나 피자, 돈가스 이런 걸 좋아해야 되는 거 아닌가? 왜 할머니처럼 고구마 줄기를 게눈 감추듯 먹어 버리냐고? 다음번 가지 무침은 많이 해서 쟁여두고 먹어야겠다. 애들이 날 닮아서 이것도 좋아한다. 왜 입맛까지 엄마를 닮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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