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플 땐 청소를 합니다

by 세둥맘

"엄마, 우리 집 너무 더러워!"

1년 동안 북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큰 딸이 대뜸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 생전 안 하던 유리창 청소를 시작한다.

"엄마, 거기 사람들은 집에 돌아오면 청소부터 해! 그래서 집이 엄청 깨끗해!"


나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청소보다는 요리를 했다.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저녁식사를 허겁지겁 준비했다. 사촌동생이 말했다.

"요리는 하라면 하겠는데, 청소는 못 하겠어!"

나도 사촌동생과 비슷한 요리 좋아, 청소 싫어과였다.


청소는 주로 남편 담당이었다. 힘센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고 청소기 안의 먼지까지 꼼꼼하게 제거하였다. 기운이 뻗칠 때는 소파도 다 분해해서 청소기로 빨아 당기고 소파 뒤까지 청소하는 기염을 발휘하였다. 나는 속으로 저것은 군대의 군기빨이라고 생각하며 감탄하였다. 그러나 남편도 이제 나이가 들고 주말부부가 되니 슬슬 청소에서 손을 놓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집안일은 내 차지가 되었다. 그러다 아무도 청소기를 돌리지 않는 주말, 나는 폭발하였고 바로 전자동 청소기를 검색해서 사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 집 최고 효자인 전자동 청소기 돌돌이가 온 집 안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


"경이 엄마는 깔끔한 성격은 아니네! 깔끔한 사람들은 저렇게 먼지 두고는 못 살거든!"

시댁살이를 할 때 형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그렇다. 나는 더러운 곳을 아주 잘 견딘다. 먼지 몇 개 굴러다니는 것쯤 아무렇지 않다. 정리 안 된 책들과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있는 책상에서도 책을 놓을 수 있는 한 뼘 공간만 있으면 공부를 할 수 있다. 더러운 곳에 대한 내성이 발달했다. 날 닮아서 그런지 애들도 정리와 청소를 할 줄 모른다. 그나마 큰 애는 외국물을 좀 먹더니 환골탈태해서 제법 정리와 청소를 잘하는 눈치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청소에 대해 배워 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는 어리다고 면제를 받고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한다고 면제를 받았다. 결혼을 하고 애가 생기면서 청소가 이제는 나의 피할 수 없는 업보가 되어 버렸다.


청소는 공간에 대한 예절


유불도를 막론하고 동양의 공부법은 청소를 '쿵푸'(공부)의 기초로 삼았다. 쓸고 닦고 정돈하고... 사찰에 가보면 알겠지만 구도자들은 무엇보다 청소의 달인들이다. 티끌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하는 발우공양을 수련의 중요한 코스로 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약속과 청소,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인생역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중략)
자기 팔자가 팍팍하다고 느낀다면,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면, 다른 건 일단 제쳐 두고 먼저 점검해 보라. 내가 얼마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를. 약속을 지키고 청소를 잘하고 있는지를. 산다는 건 별거 아니다. 시공간이 나다. 시공간과 내가 조응하는 만큼이 곧 나의 일상이다. 고로, 일상의 구원은 약속과 청소로부터 온다.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중에서-


세간에 떠도는 개운 법과도 일치하는 구석이 많다. '현관을 깨끗이 해야 복이 들어온다.' '가스레인지를 깨끗이 닦아야 복이 들어온다.' 등등


어제부터 이유 없이 몸이 아팠다. 바로 청소를 시작했다. 우선 현관부터!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신발들을 정리하고 먼지를 쓸었다. 다음은 다용도실! 각종 분리수거 물품들이 뒤엉켜있는 것들을 제자리에 맞춰놓았다. 굴러다니던 비닐봉지도 한데 모았다. 마지막으로 냉장고! 며칠 전부터 무언가 모를 액체로 떡이 되어버린 반찬 그릇들을 죄다 분리해서 씻고 닦았다. 몇 달 동안 안 먹고 이리저리 찬밥 신세였던 반찬들을 다 버렸다. 속이 시원하다. 뭔가 내 속에 꽉 막혀 있던 체증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이런 중요한 사실들을 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학교에서는 오로지 입시와 관련된 문제만 풀기 바쁘다. 가정에서는 이런 시시한 청소 따위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집만 봐도 아이들에게 청소를 가르치려고 들면 도망가기 바쁘다. 애들을 몽땅 템플스테이로 보내야 하나? 퇴직하면 청소 캠프를 열어볼까?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들은 아무데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답답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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