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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타임즈W Jun 18. 2020

[W렌즈 집콕의 세계③] 재택회식, 단골안주를 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은 얼마나 슬기롭고 지혜롭게 집콕 생활을 영위하느냐에 달렸다. 의미 없이 TV 채널을 돌리며 심심해하는 것은 이제 그만. <데일리타임즈W> 기자들이 각자의 취향과 적성을 살려 집콕 취미 생활에 돌입했다. 홈 트레이닝으로 ‘확찐자’를 예방하는가 하면, 숨겨왔던 덕후력을 살려 만화책을 돌파하고, 추억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취미활동 뿐 아니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적극적인 방편도 마련했다. 미술관 대신 스마트폰에 나만의 아트 컬렉션을 만들고, 단골 술집의 안주를 집에서 재현한 홈바를 만드는가 하면, 잔부터 원두까지 오직 나만을 위해 셀렉션한 홈카페를 열었다. 사람이 너무 그리워 결국 집에서 홈파티를 벌인 기자까지 지루함을 즐거움으로 바꾼 생생한 후기를 읽다 보면, 어서 귀가해 자신과의 설레는 데이트를 즐기고 싶어질 것이다.


예고도 없이 세상이 달라졌다. 영화에서나 보던 재택근무, 화상회의, 화상면접이 보편화되고 영화에서조차 보지 못했던 랜선 회식이 트렌드가 되었다. 원격 회식이 가능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오늘은 마케팅팀 회식합니다. 각자 5만 원씩 지원할 예정이니 먹고 싶은 음식과 술을 사서 화상 애플리케이션에 저녁 6시 30분 접속해 주세요.’ 모 기업처럼 강제성은 없지만 회식이 직장 생활의 큰 낙이었던 나는 재택회식을 시작하기로 했다.

회식(會食)은 뜻풀이 그대로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음. 또는 그런 모임’이다. 하지만 대부분 직장인에게 회식은 ‘회사가 밥 먹고 퇴근하래’ 뉘앙스의 피하고 싶은 부정정 모임(막내급 사원에게는 절대적일 만큼)이다. 친구들, 가족들과의 식사를 누가 회식이라 부르던가.
상사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술자리 분위기, 상명하복에 의한 숙취 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 침해 등 회식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지만, 두 달째 회식 금지가 지속되니 동료들과 자주 찾던 단골집 최애 메뉴들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배짱 좋게 술자리를 추진하기에 시국은 너무나 엄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결심이 섰다. ‘까짓것, 재택근무가 있으면 재택회식도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집 앞 마트에 가면 세계 맥주를 구입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 사진=백승이 기자

사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혼술, 홈술, 밀키트는 우리 생활에서 급속도로 비중을 넓혀가고 있었다. 가성비와 가심비가 맞물려 홈술을 즐기는 시대라지만 ‘집은 잠만 자는 곳, 술은 밖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철칙을 깨지 못하고 있던 터.


맥주가 무제한 들어가는 노가리, 마요네즈와 라면수프 고추장의 조합이 탁월하다. / 사진=백승이 기자

코로나는 심각 단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밖으로 나가고만 싶은 봄이 오니 만선호프 생각이 간절해졌다. 10년 넘게 중구에 위치한 직장에 다니던 시절,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기 전부터 만선호프는 퇴근길 부담 없이 들르는 곳이었다. 지금은 대학가 앞 호프집처럼 다양한 안주가 있지만 그 당시 안주라곤 노가리, 부추김치 정도. 1000원 안주가 주는 가성비, 골목을 가득 메운 야외 테이블 사이로 느껴지는 복고 감성, 우리나라에서 생맥주가 가장 맛있는 곳이라는 신뢰감까지···. 퇴근 후 빈속에 뛰어갔기에 옆집 치킨을 포장해 와서 먹어도 된다는 주인아저씨의 배려는 행복을 상승시킨다. 자타가 인정하는 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노가리 안주 정도는 자신 있다. 노가리를 바삭하게 오븐에 굽고 소스 제작에 들어갔다. 입안을 얼얼하게 하는 고추장은 맵다 맵다 하면서 자꾸 손이 가는 게 분명 MSG 효과일 것. 가장 만만한 MSG인 라면수프를 섞었더니 얼추 그 맛이다. 매운맛을 상쇄시킬 마요네즈까지 추가해 얼린 생맥주잔에 맥주(칭따오 퓨어 크래프트 생)를 따라 목을 적시니 힙지로에서처럼 밤이 짧다. 

     

치맥 이상의 궁합, 피맥. / 사진=백승이 기자

직장인 회식 메뉴 순위 1위는 삼겹살, 주류는 소주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육식파가 아니니 삼겹살에 환장하지 않고 대학교 졸업 이후로 소주는 멀리했기에 삽겸살과 소주 섭취는 회식에서 충분했다. 재택회식의 묘미는 내 맘대로 메뉴를 고를 수 있다는 것. 유난히 정신없게 업무처리를 하고 심신이 지친 날, 진한 에일맥주에 더 진한 시카고 피자를 주문해 나만의 취향을 즐겼다. 내친김에 2차로 최애 맛집인 ‘온더보더’까지 들여왔다. 코로나 종식을 바라며 코로나를 과감히 뒤집어 마시고 취저의 하루를 마친다.


요즘 귀한 몸값을 자랑한다는 코로나. / 사진=백승이 기자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이면 사무실에서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멘트가 있다. “이런 날엔 빈대떡에 막걸리지.” 재택회식에 자신감이 충만해질 무렵, 그런 날이 왔다. 온라인 장보기로 주문해두었던 ‘순희네 빈대떡’을 냉동실에서 꺼냈다. 순희네 빈대떡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40년 전통을 가진 광장시장 명물로 맷돌에 녹두를 직접 갈아 숙주, 김치, 파를 넣어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유튜브 영상을 보듯  현장 영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맛의 비결은 지글지글 기름에 튀기듯 빈대떡을 부치는 것. 비록 냉동이지만 기름을 가득 부어 부쳐내니 바삭한 식감이 일품, 집 안 공기까지 광장시장 빈대떡 골목이다. 


간편하게 밀키트로 즐길 수 있는 순희네 빈대떡, 찰떡궁합 막걸리. / 사진=백승이 기자

상사 눈치 볼 피곤함도, 2차 3차 달리면서 술값 걱정할 일도 없다. 점점 진화하고 있는 밀키트, 실시간 배달음식으로 먹고 싶은 메뉴도 얼마든지 주문할 수 있다. 때론 시끌벅적한 핫 플레이스도 좋지만, 조용한 곳에서 동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스트레스 풀 수 있는 매력에 재택회식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시국이 안정되면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해 재택회식을 함께 즐기자는 계획을 세우며 내일 회식 메뉴를 고민해본다.



데일리타임즈W 백승이 기자 dt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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