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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챠하좋은 Apr 03. 2023

안다는 것

        

백순공: 선의 흔적_Traces of the Mind 전, 드로잉





백순공: 선의 흔적_Traces of the Mind 전





백순공: 선의 흔적_Traces of the Mind 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대학교 전공 교수님이자 백순공 작가님의 회고전에 다녀왔다. 죽기 전에 회고전을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일부러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안다’라고 생각했던 시간 동안 나는 선생님을 0.01%라도 이해하고 소통했던 순간들이 있었을까.

    

선생님께서 파쇄지 위에 반복적으로 선을 이리저리 그으며 작업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작업하실 때는 검정 뿔테 안경을 외출하실 때는 체크무늬의 헌팅캡을 즐겨 쓰셨던 모습이 기억난다. 가끔 북촌의 작업실에 놀러 갈 때면 국궁에 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하시거나, 취미로 큼지막한 전통기타를 치시던 여유 있고 멋스러운 분이셨다. 의외로 작업실 근처 족욕장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수더분하게 이야기를 나누시던 인간적인 할아버지로 기억하기도 한다.     


졸업 후 간혹 연락을 드렸었지만, 작업을 못 하는 시기에는 연락을 드리기가 쉽지 않았다. 회고전을 보는 내내 선생님께서 남긴 작업 노트의 짧은 문장들이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그때 서야 잠시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백순공: 선의 흔적_Traces of the Mind 전




‘무모한 선 긋기의 반복, 빽빽한 선들로 구성된 색 면은 참으로 무모한 수행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모함으로 무모함을 이기기 위한 또한 나의 수행이다. ’

2008년 노트          



삶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놓지 않으셨던 분이셨을까.

반복적인 선 긋기라는 행위는 평소 선생님이 즐겨하시던 산책하기, 생각하기, 삶을 바라보기와 같은 일상의 행위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무수한 마음들을 관조하는 행위를 떠올리도록 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께서도 퇴직하시게 되면서는 북면 작업실로 선생님을 뵈러 갔었다.

만나 뵐 때마다 근황을 여쭤보면 활 쏘는 일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몰입하며 이야기를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이와 상관없이 활을 먼저 배우셨던 분들께 선배님들께 깍듯이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표정이 기억난다. 활을 쏘기 전에 예를 갖추고 마음을 가다듬는 일,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일,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굉장히 흥미로운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전통기타, 국궁 활을 쏘기까지의 섬세한 과정들을 다스리는 일들은 선생님께서 마음을 조절하는 수행의 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본질과 가까운 일들에 더 끌림을 느끼셨던 것일까.     


평소에 선생님은 늘 할 일 없는 척을 하셨던 고요한 분이셨기 때문에 회고전을 통해 공개되어 버린 솔직한 작업 노트를 읽으며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그의 삶을 발견하면서 놀라웠고 새롭게 이해하도록 했다.






                                                                                    








선생님의 작업 노트 중     


“목적에 지친 목적 없는 거닒, 삶의 신선한 여백”     

“삶이 무모하다. 무모한 삶이다. 무모한 선 긋기다. ”     

“이러저러한 이미지와 매체로서 제시할 뿐이지 명확한 답변이나 결론으로서 제시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작업을 해오면서 작업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으셨던 것은 삶이 그러하기 때문일까.

작업 노트를 보는 내내 선생님의 수행적인 시선과 태도를 보며 위안을 받는다.





                                                                      

폴 고갱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본질적 질문을 던졌던 고갱의 작품 제목이 문득 생각났다. 고갱의 사적인 삶은 작품 제목과 달리 모순적인 삶을 살았지만, 지금까지 작품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인간 본질을 건드리는 제목에서 강력한 힘을 느낀다.                    





전시를 보는 내내 살아생전에 선생님께서 회고전을 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글을 읽고, 작품을 보고 대화를 나눠도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여유 있고 늘 고요하시던 한 사람의 마음을 슬쩍 엿보게 되면서 누구나 삶은 불완전하구나. 선생님도 불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작업하기, 활쏘기, 글쓰기, 산책하기, 바라보기 등 일상의 반복을 통해 무수히 일어나는 마음들을 조절하셨구나. 느끼며 전시를 보는 내내 위로를 받았다.    


여유 없이 흘러가는 세상에서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에 우리의 언어는 너무나 거칠고 추상적이고 삶은 불완전하다. 그 속에서 외로이 걸어가고 있는 우리네를 보며 애정과 사랑을 보낸다.         









선생님의 작품을 유심히 보다가 유머를 발견했다. 일부러 남겨두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수줍음을 잘 타셨던 선생님의 유머가 세상에 대한 위트를 던지고 사라지신 것만 같았다.














백순공: 선의 흔적

전시 장소: 경남도립미술관 2층 전관

전시 기간: 2022.10.28.(금)-2023.02.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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