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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기 Apr 04. 2024

외국어 유목민은 선택과 집중을 못해

외국어 유목민의 자아성찰 18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라고, 내가 제일 약한 것이다. 나는 다중 선택 분산 투자…. 시드머니도 없는데 분산 투자하는 격이다. 제한된 용량의 뇌에 이것저것 집어넣는다. 취미라면 피아노, 기타, 크로키, 글쓰기…. 외국어라면 영어, 일본어, 독일어…. 커리어라면 개발, 편집….


분명 하는 동안에는 매우 즐겁지만, 뒤돌아 볼 때 남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런 경험에 이골이 난 나는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매우 잘 알며 비효율의 끝판왕이 바로 나란 것도 잘 안다. 하나만 제대로 해도 모자란 요즘 시대에 이것저것 찔끔찔끔하는 나는 얼마나 수요 없는 공급일까.


너무나 좋은 사람들은 나에게 할 줄 아는 게 많은 거 아니냐고 긍정적인 말을 해준다. 그렇게 봐주면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 한편 팩트를 꽂아주는 사람들은 잔소리와 함께 내가 이젠 어딘가 정착하기를 바란다고 말해준다. 모두가 좋은 사람이며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인 것은 틀림없다.


객관적으로 멀리서 바라보자면 사실 이도저도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희한하게도 이것저것 해본 경험으로 땜빵(?)식으로 취직은 했다만, 들어와서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명확하지 않아서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나는 무얼 하는 사람이에요’하고 말을 할 때 나는 나를 정의하기가 매우 힘들기도 하다.


내가 하고 있는 것으로 나를 정의 내리는 것도 좋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나를 정의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자면 나는 아주 많은 문장으로 나를 정의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나중에 혼자 한 번 해보아야겠다)


내가 선택과 집중이라는 것을 잘했다면 어땠을지도 생각해 본다. 그럼 개발에 모든 능력을 몰빵하고 외국어는 영어만 하고 취미는 오래된 피아노만 하고 있으려나. 그것도 충분히 멋져 보인다. 지금의 나는? 멋있는 건 모르겠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딱히 없지만, ‘이게 제 전문이에요’ 할 것도 딱히 없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나으려니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어 공부 모임 없나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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