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지는 마음

by 유선아


계란말이의 시작은 늘 이런 식이다. 어설프게 말리다가 터져 흐르고 다른 쪽은 엉기고, 찢기고, 미끌미끌하다. 심기일전하여 몇 번을 뒤집어 보지만 덜 익어서 망, 너무 익어서 망- 망하기가 십상이다. 전 국민의 계란말이가 실상 이토록 어려운 음식이다.


보통은 시작이 이런 식이라 매번 망했다 싶다가도 풀어놓은 계란이 아직 볼 안에 담긴 상태로 대기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해볼까’ 하는 심정이 든다. 그렇게 살살 달래 가며 말다 보면, 중간중간 끊어지고 울퉁불퉁하더라도 종국에는 그럴싸한 계란말이 모양새가 난다. 물론 속을 살펴보면 덜 말린 스카프인가 싶어도 어쨌든 얼추 모양은 난다는 말씀.

뿐이랴, 완성된 모양이 영 아니다 싶을 땐 김밥 발이나 틀을 이용해 모양을 잡아놓으면 단정하게 각이 잡힌 계란말이가 탄생한다. 때로는 아, 이것이 진정 내가 만든 계란말이인가 싶을 만큼 흡족한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시작이 엉망이라 하더라도, 살살 달래어 기름도 두르고 엉덩이 툭툭 다독이며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 돌돌 말아 뒤집다 보면 제법 사람다워지는 때가 있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는 옛말이 틀림없다 싶다가도 계란을 말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다워질 수 있었던 계란들이 요리하는 사람의 인내력 부족으로 결국 스크램블을 면치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한편이 저릿하다.

천성이냐 양육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밝혀진 바로는 대체로 51대 49 정도의 비율로 유전과 환경이 거의 반반씩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계란도 그렇다. 태어난 환경도, 자란 조건도 제각각이다. 자연 농장에서 자유롭게 자란 1번 닭이 낳은 계란도 있고, 24시간 불 켜진 닭장 안에서 늘 낮인 줄로 알고 잠도 없이 알을 낳는 4번 닭의 계란도 있다. 물론 일반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계란은 대부분 3번에서 4번이다. 경기가 어려운 요즘 같은 불황 속에서는 30구 한 판에 할인까지 붙은 4번 계란이 쏟아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1번이든, 2번이든, 3번이든, 4번이든 이들도 모두 계란말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태어난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말아질 수 없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상담실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문제의 원인은 거의 언제나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 쪽에 있다. 아이들이 천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어른들의 미숙한 요리 실력, 망쳐진 것에 대한 자비 없음, 쉽게 포기하는 인내력 부족으로 아이들은 말쑥한 계란말이가 되지 못한다. 때로는 모든 책임이 전부 어른들의 몫인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어른들 또한 누군가에게 제대로 말려보지 못한 계란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정한 계란말이가 되어보지 못한 채 식탁 구석에서 외면당한 기억을 품고 살았던 어른들. 누군가의 부족한 정성, 미숙한 인내, 무심한 손길 아래서 억울하고 섭섭하게 뒤섞이고 흩어진 시간들. 기껏해야 반쯤 익은 채로 겨우겨우 오늘에 이르렀고, 뚜껑도 없이 오래도록 방치되었던 마음을 안고도 끝끝내 우리는 자랐다. 온전하지 않아도, 예쁘게 말리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끈질기게 익어가며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양이 어떠했든 누군가를 다시 자라나게 하는 자리에 서있다. 말아지지 못했던 기억을 품은 채 누군가를 살살 달래고, 다그치지 않고, 흩어지지 않도록 온도를 조절하며.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계란을 말아가는 중인지 모른다. 익지 않은 마음을 조심스레 다듬으며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계란을 말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부디 모든 계란들이 식탁의 주인공으로 완성되기를.





*이미지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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