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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찌 Dec 14. 2022

애자일하고 린하게 일할 때 종종 놓치는 것들

스타트업 방법론의 중도

한 줌의 모래처럼 흩어져버리는 것이 월급이나 체력 말고도 또 있었다. 슬프게도 그것은 유저의 재방문이었다.(나는 플랫폼 서비스를 운영하는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기에 이것은 매우 큰 문제였다.)


당시 우리 서비스는 웹이었고, 가입과 결제까지 진행한 '우리 유저'들을 웹으로 초청하는 수단은 카카오톡의 알림톡이었다. 카톡에서 링크를 클릭해서 브라우저에 접속하면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우리 모두 경험적으로 안다. 

하나, 웹을 보는 동안 카톡을 확인할 수 없고

둘, 웹을 나가면 보던 페이지가 날아가 버린다.


그런데 여기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빠르게 MVP*를 만들려다 보니, 핵심 기능은 노션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 유저들의 저니는 이러했다.

[카카오톡 → 노션 → 노션 안에 심어둔 링크로 우리 서비스 접속 → 최종 액션]

MVP* : 최소 기능 제품(Minimum Viable Product)


변명하자면 모든 스타트업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속도가 중요했다. 노션은 웹페이지 몇 개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괜찮은 대안이었다. 저 불편한 경로를 거쳐서도 초기에는 활성화가 됐다. 다음 과제는 비슷한 서비스로 유저의 재구매를 일으키는 일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기적처럼 우리 서비스에 몰렸던 유저들은 재구매 지표에서 두 번째 기적을 보여주진 않았다.


우리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헴과 호처럼 비어 가는 곳간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누가 우리 유저를 사라지게 만들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션을 사용했던 우리는 유저 저니 앞단에서의 페이지뷰, 각종 클릭, 체류 시간 등의 유저 데이터를 하나도 수집할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굉장히 주도적으로 내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환경 속에 있었다. 한바탕 많은 손님을 받고 난 후의 후유증처럼 일이 썰물처럼 빨려나가 텅 빈 시간이 주어졌고, 그 시간에 나는 유저 저니를 더듬어봤던 것이다. 각종 지표를 취합하고 분석한 후, 노션에 외주화 했던 이 기능이야말로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지표임을 결론지었다.


다음 회의에 우리는 이 안건에 대해 논의했고 해당 기능은 현재 우리 서비스의 핵심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해당 기능이 탑재된 이후 서비스 체류시간은 76% 증가했고, 전체 페이지뷰 중 점유율은 20%를 상회한다.



본문에 적지는 못했지만 나는 애자일하지 못했던 과거 베타 서비스 때의 기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어쩌면 그렇게 린하지 못했을까? 이게 스타트업이 맞을까? 그때 조금만 더 경험이 있었더라면...' 이런 생각으로 애자일, 린 스타트업 방법론의 신봉자처럼 의견을 내놓곤 했다. 욕심을 버리고 최대한 가볍게 만든 MVP로도 충분히 시장 검증을 할 수 있었다며 과거의 나를 보며 혀를 찼었다.


하지만 결국엔 답은 찾아나가는 것이다.

극단에 가보지 못한 채로 균형점이 어디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스타트업에서 실패를 하나의 실력으로 쳐주는(말만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유는 적어도 이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서는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속에만 있던 '스타트업 = 린, 애자일' 공식은 이제 삭제됐다. 스타트업은 세상의 문제에 우리만의 답을 내놓는 곳이다. 그렇다면 우리만의 방법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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