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동료는 복지가 아닌 성장이다.
'좋은 동료가 복지다'라는 말을
체감하기 전까지 내 심정은 이랬다.
'복지 없으니까 저런 걸로 얼버무리네.'
처음엔 좋은 동료가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 어느 회사를 가든 빌런은 있기 마련이고, 그만큼 빌런을 함께 씹어 줄 내 편도 있기 마련이라 하나마나 한 소리를 구태여 쓰는 이유는 동료들의 간판을 강조하기 위함이려나 싶었다.(초기엔 크게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이 자본으로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때 주로 쓰는 워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말을 뼈저리게 이해할 기회가 찾아왔으니.. 발단은 월단위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A였다. 나는 전체 전략과 액션플랜을 짜고 분배하는 역할이었다. 지난달에 이어 동일하게 진행하는 프로젝트인지라 KPT에 따라 수정된 전략으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액션에 대한 데이터가 많지 않았고 각 액션들이 얽히고설켜 결과가 만들어졌던지라 어떤 액션이 더 중요하다기보단 그저 순서가 있을 뿐이었다.
전월엔 준수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번엔 '양보다 질'적인 목표를 외치며 시작했던 점, 그리고 적극적인 마케팅과 세일즈를 통해 데려 온 리드들을 운영에서 대체로 만족시키지 못한 점이 내 발목을 잡았다. 특히 B2B 세일즈를 하며 고객님들의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다고 내 이름을 걸고 말해야 하는 게 망설여졌다.
그래서였을까, 전반적으로 비슷한 액션을 했는데 성과가 전월에 비해 저조했고 우리에겐 좀 더 강력한 액션이 필요했다. 극 I에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콜드콜을 할까 말까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타깃에게 닿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마땅하긴 하지만 콜드콜의 낮은 전환율과 폰 포비아, 막상 데려온다 해도 만족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까지 뒤섞여 프로젝트가 끝나기 4일 전까지 나는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프로젝트 데일리 미팅에서 인턴인 친구가 "저희 콜드콜은 이번에 안 하나요?"라고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갑자기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 친구도 전화 업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운영 알바로 시작했다가 인턴으로 전환해서 같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일즈가 본인의 업무도 아니었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준 것이다. 사실 남몰래 모른 체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부끄럽고, 고마웠다.
우리는 그 회의가 끝나자마자 리드를 다시 정리해서 각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가 콜드메일을 여러 차례 뿌리고, 랜딩페이지를 바꿔놓고, 여러 sns 채널을 통해 뿌려둔 떡밥 덕분에 콜드콜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그 인턴 친구는 우리가 데리고 오고 싶었던 기업들을 몇 군데 데려오기까지 했다. 전환이 일어나지 않은 건은 그 사유라도 알게 됐다.
콜드콜을 하지 않았으면 우리의 두 번째 프로젝트는 처참하게 끝날 참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지금은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이상하게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를 환기시켜 준 건 다름 아닌 나보다 거의 10살은 어린 인턴 친구였다.
일머리가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잘되는 친구였기 때문에 나는 평소에도 함께 일하는 게 편하고 즐겁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좋은 동료'에 대한 개념이 생기게 됐다. 꼭 비슷한 직급, 나이가 아니더라도 함께 일하는 사이에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동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동료는 그 자신의 탁월함을 통해 내가 무능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나는 '좋은 동료'를 '좋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와 업무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거고, 자연스럽게 나는 그의 탁월함을 닮아가거나 그보다 나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얼마나 좋은 선순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