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추구에 대한 고찰
극한의 효율 추구자였던 나는 자동화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정도 일이 손에 익고 나자 아무도 시키지 않은 엑셀 자동화를 위해 업무 파일을 갈아엎기도 했고, 중요하지 않은 정기 업무에 리소스를 줄이기 위한 GPT 자동화 툴을 세팅하기도 했다. 효율적으로 일을 해서 정해진 시간 내에 더 많은 일을 한다, 이 개념이 내가 생각할 때 '일잘러'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효율 추구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효율이 단순히 내 업무 소요 시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내게 맡겨진 일을 100%, 120% 처리하고 칼퇴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멋진' 모습이었다.
스타트업 바닥에 들어와 사업에 더 깊게 관여를 하면서부터는 이 버릇이 독이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추구했던 효율성은 오너십을 가진 구성원보단 고용인에게 이상적인 효율성이었기 때문이다. 나름 큰 규모의 기업에서 일을 했던 관성 때문이었을까? 나는 스타트업에 건너오고 나서도 상당 부분의 시간 동안 '내 일'을 해치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만 만족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건 네 일, 내 일이 아니라 해야 할 많은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파악하고,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스타트업이라 할지라도 각자 나름의 계획은 있다. 사업계획서는 각 팀이 생각한 논리에 따라 시장이 그려지고 솔루션이 제안되며 시장에 침투할 준비를 갖추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논리에 팀이 공감하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여기서 '내 일'을 효율적으로 끝내고 퇴근하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우리의 논리가 맞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더 많은 계획을 실행시켜 사업을 키우려고 안달이 날 테니 말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스타트업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타트업에 오니 내가 하기 싫은 모든 일들을 하게 됐다. 내가 몸 담고 있는 기업의 비전과 미션을 믿었기 때문이고, 그 계획을 함께 짰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들이 해야 하는 일들이 되면 호불호를 떠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나는 내적 갈등을 겪었다. 심적으로 하기 싫은 일들은 필연적으로 무능력, 낮은 자신감, 낮은 지식 상태, 적은 경험 상태를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에 업무 처리가 '효율적'일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극악의 효율로 치닫는 상황에서 내가 자주 했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스스로에게 답해줄 수 있다.
"응, 그렇게까지 해야 돼."
스타트업은 자신만의 성공방정식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는 기업이다.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절대 효율로 가득 찬 꽃밭일 수가 없다. 거부와 무시, 결렬과 실패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선 효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느낀다.
혹시나 오해를 살까봐 덧붙이면..
야근을 하는 게 멋지다는 게 아니라 일을 빨리 하는 것은 최대 효율이 2배 정도겠지만 그런 류의 업무 효율을 따지는 것보다 전체적인 그림을 인지한 상태에서 일을 의욕적으로 해 나가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