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 월어 화이트는, 사실상 화학 천재인데, 어느 날 폐암 3기 선고를 받는다. 뇌성마비인 아들과 곧 태어날 딸을 두고 고민하던 월터는 옛 제자를 만나 마약을 만들기로 결심하는데, 과연 화학 천재라 완벽한 고퀄리티의 마약을 만들어 버린다. 한 번 맡아보기만 해도 뿅 가는 마약 덕분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벌어들이지만 마약 세일즈가 보통 장사처럼 고만고만하겠는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 번 돈으로 자신의 병원 치료비를 내고, 남은 가족들, 아이들 학비까지 쟁여놓는데 결국은 아내에게 이 사실을 들켜버리고 만다. 범법을 저지른 남편을 용서할 수 없는 아내는 월터에게 이혼할 것을 요구하는데, 가족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월터는 아내에게 이 모든 것이 결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서 한 것이었음을 강력하게 어필해 보지만 아내와의 엇나감은 심해져만 가고… 드라마라 극단적인 설정이 있겠지만 주인공 월터는 점점 더 무분별하게 여러 사람들을 해치고 결국 아들을 포함한 모든 가족에게 내팽개쳐진다. 인생의 중심이었던 가족을 잃지만 그래도 그가 저지른 모든 악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남기고 갈 가족을 위했기 때문에, 끝까지 자신이 목숨 바쳐,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며 번 돈을, 가족에게 전해주려 최선을 다한다. 당신이 만일 이런 가장을 둔, 월터의 아내였다면? 자식이었다면? 당신의 선택은?
아빠들이 다 그렇지 뭐. 언제 한 번 자기 자신을 위해서 온전히 살아본 적 있던가. 뭘 해도 가족 생각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아버지라는 이름 석자의 무게 아니던가. 살면서 아빠가 지독하게 미운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을 떠올려보자. 과연 아빠는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랬던 것일까.
내가 어릴 적에 아빠를 이해할 수 없던 것이, 자꾸만 주식투자를 하거나 뭔가 한 방을 노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90년대, 아빠도 역시 주식 시장에 줄을 섰다가 IMF 앞에 우리 집은 무너졌다. 분명 아빠가 잘못해서 집이 빚을 지게 되었는데 엄마는 이상하게 그 흔한 바가지 한 번 안 긁는 것이었다. 나아가 아빠는 속상한 마음을 술로 풀었고, 주식 상황을 전화로 확인하다 애꿎은 전화기만 여러 차례 부쉈다. 아빠가 전화를 부술 때마다 엄마는 새 전화기를 샀는데 처음에는 백화점에서 사던 것이, 전자상가로, 나중에는 동네 디씨 마트까지 수준을 낮춰야 했을 만큼 전화기 폭행 사건은 잦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아빠가 술 먹고 들어와 아비규환이 되는 집이 우리 집이었다. 성인이 된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친척들은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왜? 아빠한테 지쳐서? 키득”
‘무슨 가장이 저래. 다른 아빠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오지는 못할 망정 잃고 들어와서 저렇게 당당하다니! 돈을 못 벌면 인자하기라도 하던가. 진짜 너무하네.’ 아빠라고 데면데면한 내 태도를 모를 리 없었다. 그즈음 나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어 더욱 예민해질 시기가 되었고, 아빠와의 사이에 더 높은 장벽을 쳤고 아빠는 그런 내가 아마도 나보다 더 불편하셨을 거다. 엄마가 일을 하는 시간에는 나와 동생만 있는 집에 아빠는 잘 들어오지 않았고 술 한잔 더 걸치러 가버리거나 집에 오더라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잠만 주무셨다. 생각해보니 학창 시절에 아빠랑 나눈 대화가 아무것도 없다. 기억에 남는 단어도 거의 없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아빠 차를 타고 등교를 했는데 등교를 하면서도 묵언수행만 했다. 이런 배은망덕한 딸을 봤나. 공짜로 편하게 학교까지 데려다주는데 아빠 비위는 못 맞출망정 기껏 했던 말이 “다녀오겠습니다.” 정적이 도는 차 안에서 라디오 소리만 울려 퍼졌던 내 학창 시절 등굣길...
지금은 아빠랑 얼굴 볼 시간도 없고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는데 함께 살며 보냈던 그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뭘 했나 싶다. 그렇지만 아빠도 앞 길이 막막했던 그 시절, 속이 답답하기만 해서 아직 한참은 더 키워야 하는 딸이랑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 막막했을 것이다. 그때 딸이 더 애교도 부리고 말도 걸고 했어야 딸 다운 건데...
아빠가 왜 그랬을까. 아빠는 무엇 때문에 매일같이 그렇게 미간에 주름을 찌푸리고 고민을 하셨던 걸까. 정답은 바로 나다. 딸년 하나 제대로 키우려고 그랬던 거다. 엄마랑 둘만 알콩달콩 지내셨다면 뭣 하러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야 했겠나. 주식으로 하락한 후 결국 아빠는 밤낮으로 회사와 가게 일을 병행하며 자식들 중, 고등학교 졸업을 시키셨고 유학에 대학에 대학원까지 쉼 없이 밀어주셨다. IMF 이후 내가 용돈 타서 공부한 세월이 12년이었다. 이 징그러운 딸 하나 제대로 키워 보려고 그래서 한 방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길 바란 것도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몰랐고 엄마는 알고 계셨다. 아빠의 무모한 도전이 결코 아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콩 내라 팥 내라 매일 뭔가를 해다 바쳐야 하는 딸들 때문이었음을. 어릴 땐 정말 아무것도 와 닿지 않았다. 아무리 성숙하게 컸다고 해도, 철이라는 것은 절대 어릴 때는 들래야 들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내가 만일 브레이킹 배드 속의 자식이었다면, 아내였다면, 나는 가족을 위해 마약마저 만든 중범죄를 지은 아빠를 쫓아내려고 할까? 우리 엄마가 그랬듯 자신의 문드러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가장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었을까. 만일 내가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왔다고 해도, 우리 아빠는 나를 내치려기보다, 보쌈해서 도망갈 궁리를 먼저 하셨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