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부곡하와이란 늘 즐거운 축제가 열리는 환상의 나라였다. 서울사람들은 자연농원이 그런 곳이라고 하는데, 경남 근방에서 컸던 내 또래들은 부곡하와이 한 번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경남 창녕에 위치했던 부곡하와이는 연 200만 명이 방문했던 꿈과 희망의 나라였다. 유치원 캠프도, 학원 캠프도 부곡하와이에서 했다. 나는 인디언 추장 복장을 하고, 짜라빠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박나박 자랐다.
어느 주말, 아빠가 예고 없이 "오늘 부곡하와이 가자"라고 말하면 우리는 "와아"하고 소리를 지른 후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그런 날이면 일기에 부곡하와이를 갔는데, 어떤 놀이 기구를 몇 번을 탔고 수영을 몇 번 했으며 무슨 공연을 보았다고 상세하게 적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곳은 꿈같은 나라였다. 놀이공원, 야외 풀장, 실내 수영장, 온천, 특설 공연장, 그리고 동물원까지! 자본주의에 감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릴 적, 이런 꿈과 환상의 나라를 단돈 몇 푼으로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시절 허리에 튜브를 끼고 실외 수영장과 실내 수영장을 왔다 갔다 하거나, 어린이 미끄럼틀 한 번이라도 더 타 보겠다고 줄을 서던 풍경들이 오롯이 기억난다.
그런 부곡하와이가 폐장을 하게 되며 부곡하와이 추억의 영상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영상 속에서 본 것은, 젊은 아빠의 모습이었다. 진짜 우리 아빠가 찍힌 것은 아니고, 촌스런 수영모를 쓰고 아이들 튜브 두 개를 꼭 잡고 있는 아저씨들의 모습이 꼭 우리 아빠와 비슷했던 것이다. 우리와 놀러 가면 아빠는 수영장에서 물장구 한 번 제대로 치지 않았다. 아빠는 통영 바닷가에서 자라 개헤엄의 대가다. 수영 좋아하고 물 좋아하는 아빠는 한 번도 부곡하와이를 제대로 즐긴 적이 없었다. 나는 어릴 적 여름마다 유행하는 최신형 튜브를 샀는데, 짓궂은 남자 애들이 내 튜브에 매달리면 아빠는 그걸 떼어 보내고, 내가 미끄럼틀을 타겠다고 하면 어려서 미끄럼틀을 못 타는 동생을 달래고. 배 고프다면 핫도그 사 오고, 한 손에는 무거운 짐을 들고 한 팔에는 동생을 안고. 아빠는 여름 주말이면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부곡하와이에 갔다. 나는 실내 수영장도, 실외 수영장도, 놀이기구도 모두 타야 했고 공연 시간에 맞춰서 공연들도 다 봐야 했다. 군무를 추는 화려한 러시아 미녀들은 내 눈에는 다 공주님으로 보였다. 그 시절 나는 아무 걱정 없이 아빠 차 타고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사달라고 졸랐다. 집에 오는 길에는 차 뒷자리에서 곧잘 잠이 들었는데, 잠을 자다 집에 도착하면 걸어서 집에 들어가기 싫으니까 깨지 않은 척하며 아빠한테 업혀 들어가기도 했다. 당연히 그땐 좋은 줄 몰랐던 너무나 평화로운 주말들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른이 되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너무 어려서 함께 놀기도 힘들었던 동생은, 나와 나란히 삼십 대가 되었다. 서울에 살게 되며 동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롯데월드 연간이용권을 끊는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놀이공원에 대한 좋은 기억만 있던 동생과 나는 주기적으로 롯데월드와 에버랜드를 함께 방문한다. 이제 우리는 할인카드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알아보고, 가는 길, 오는 길에는 직접 운전을 하고, 대신 줄을 서 주는 엄마 아빠 대신 직접 모든 놀이기구를 기다려서 탄다. 그리고 몹시 지쳐서 집에 돌아온다. 적당히 놀면 되는데 그놈의 뽕이 뭐라고, 뽕을 뽑자고 지칠 때까지 논다.
우리는 줄 서서 티 익스프레스 탈 차례를 기다리며, 어린 시절 엄마가 단 하나의 놀이기구도 타지 않고 우리가 탈 기구의 줄만 서 주던 이야기를 했다.
“아, 엄마가 지금도 대신 줄 서 주면 좋을 텐데”
이런 철 안 든 소리나 하면서 말이다.
젊었던 아빠와 엄마가 그립다. 여전히 우리를 데리고 여행 계획을 짜 주고 뭘 먹을지, 어디서 잘 지를 다 챙겨주면 좋겠다. 젊은 아빠 엄마 앞에서 떼도 쓰고 어리광도 부리는 세월이 딱 한 번만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부곡하와이에는, 복작복작 지지고 볶았던 나의 어린 시절의 우리 네 식구의 추억이 많이 담겨 있다. 옛 영상들을 찾아보며 사무치게 그리운 그 시절을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