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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Jun 05. 2023

60년대 생들이 온다

은퇴를 전후한 우리 부모님들을 어떻게 케어해 드려야 할까?

 아빠가 은퇴를 했는데도 계속 일을 한다. 아빠 친구들과 함께 작은 사업체를 꾸려 회사에서 써먹던 기술로 드문드문 일을 이어가고 있다. 아빠는 친구들과 70살이 넘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작정이라고 한다. 처음엔 아빠가 잠시도 쉬지 않고 이 일 저 일을 쫓아다니는 것이 속상했으나 아빠 스스로가 일을 즐기는 것 같고 아빠가 밖에 나가서 사회활동 하는 것에 대해 엄마도 즐거워하니(보통의 엄마들과 같이), 가정이 화목하다는데 내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았다. 


 860만의 은퇴 쓰나미. 60년대 생들이 온다.

 티비 다큐로 나왔던 이 주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본격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것을 피부로 실감하는 것 같다. 어떤 대책이 세워질지 모르고 대처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큐는, 여느 시사 프로그램들처럼 사회적 문제만 짚어주고 끝났다. 나머지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짧지만 내가 살아본 경험에 의하면, 정책이 좋아지길 기대하거나 누군가에게 무엇을 바라기보다 내 한 몸뚱이 움직여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빨랐다. 나는 세상을 바꿀 능력도 없고 역량도 되지 않지만, 최소한 우리 부모님 정도는 케어할 수 있다. 수명은 길어지고 그에 비해 터무니없이 빠른 은퇴를 맞닥뜨린 부모님의 미래를, 나는 함께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은퇴를 하고, 노후를 즐겨야 할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가 지금부터 자격증을 따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볼 때 그냥 가만 쉬시라고 말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빠는 젊었을 적에도 남들 묵묵히 회사에 다닐 적에 혼자 오만 걱정으로 자영업을 하고 투잡 쓰리잡을 해가면서 노후를 준비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것인지 지금도 앞으로 남은 아빠의 세월에 어떤 원대한 꿈과 희망을 갖고 있다. 건강 관리도 엄청 열심히라, 쉬는 날 전화를 걸어보면 늘 헬스장 아니면 산이다. 나는 그런 아빠가 여전히 존경스럽다.

     

 엄마가 60대에 그림을 시작해서 90대에 화가가 되어 전시를 했다는 한 할머니 이야기를 한다. 90대 할머니니를 보고 엄마는 어떤 희망을 얻었을까? 그림공부에 한창인 엄마는 어쩌면 30년 동안 묵묵히 자기 계발을 해서 어느 날 유명한 화가가 될지도 모른다. 인스타그램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인터넷 쇼핑은 누구보다 잘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말했다. 할머니의 60대와 비교해 보라며, 엄마가 90살이 되면 늙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나는 곧 엄마에게 가천대 총장으로 유명한 90대 이길여 여사님의 영상을 보내주었다. 영상에서는 축사를 하는 이길여 총장님에게 젊은 학생들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박수 치는 것에 공감했다. 90이 넘은 나이에도 세련된 패션감각과 자세, 그리고 교양 있는 말투. 바로, 닮고 싶은 몇십 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현재 만 65세를 기준으로 노약자를 구분한다. 그런데 이 구분선 때문에 나이 듦에 대해 더욱 빨리 한계 지어져 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떤 65세는 30대 보다 더 기력이 좋기도 하다. 만 65세를 넘은 내 아버지도 별다른 노인다움 없이 자세도 꼿꼿하고 젊었을 적과 별 다른 게 없다. 만 90세를 넘은 우리 할머니는 아직도 기차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목소리도 크고 귀도 밝다. 지금 60대인 우리 부모님은 앞으로 40여 년에서 70~80여 년을 더 사실 지도 모른다. 100세 시대가 아니라 120세, 140세 시대가 될 것이다.(그럼 대체 우리는 몇 살까지 살게 될까?) 90세가 넘어도 지금까지 정정한 우리 할머니를 보면 나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에 반해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 뒤처진 부모님들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해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 어릴 적 우리가 크면 뭐가 될지,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부모님이 방향성을 제시해 주셨던 것처럼, 이번엔 우리가 부모님을 돌볼 차례가 아닌가 싶다. 부모님들은, 어쩌면 부모님 나이보다 조금 더 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노후 준비를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건강해서 당황할 수도 있다. 나는 과연, 우리 부모님에게 어떤 미래를 설계해 보자고 할 수 있을까? 


 지난 집안 제사 후, 아빠와 제사음식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물었다. 이 제삿밥이 예전에는 먹지 못한 귀한 것 아니었냐고. 그런데 오랫동안 제사 메뉴에 변함이 없어서 요즘 사람들은 제사 때 만든 음식을 그렇게 귀하게 먹지 않는다는데, 그러면 메뉴를 좀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빠가 돌아가시면 맛난 대게와 한우를 올려 드리겠다고. 그랬더니 아빠가 말했다.

 “야, 나 안 죽을지도 모른다. 너랑 비슷하게 갈지도 몰라...”

 나는 아빠의 대답에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러게 누구나 노인이 된다. 지금은 와닿지 않지만, 아빠랑 나랑 둘 다 꼬부랑 할아버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나’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아빠 생신과 어버이날에 카드를 쓰면 항상 쓰는 문구가 있다.

 ‘150살까지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주세요.’

 아빠가 나이가 한참 들어서도 이렇게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제사상에 올릴 생각 하지 말고, 글 쓴 김에 배달 앱으로 대게 주문 한 번 시켜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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