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제 내일모레 40 대란 말이다.
금요일 저녁, 침대에 편히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나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엄마가 날 보고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다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문을 열어보라고 한다. 전화기 너머로 불안한 소리가 들린다.
'땡, 15층입니다.'
"엄마, 지금 내 집 앞이야?"
허둥지둥 정신을 못 차리고 문을 열었는데 어벙벙함의 정도가 지나치다. 이런 황당한 일이 없었다. 경남 창원에서 충북 음성까지 부모님이 차를 몰고 온 것이다. 우리 집이 어떤 집이냐 하면, 내가 20살에 출가한 이후로 부모님이 우리 집을 방문 한 적은 딱 네 번 밖에 없었다. 이번이 다섯 번 째인 것이다. 17년 동안. 그것도 여태껏 늘 고속버스나 KTX를 타고 다녀서 우리가 마중을 나가고 배웅을 하곤 했단 말이다. 비상시를 대비하여 우리들 집 주소를 알고 계시긴 하나, 택배를 보내줄 때나 서프라이즈를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깜짝 택배 선물이 도착할 때 언젠가는 그 깜짝 선물이 부모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 했어야 할까. 도착 5분 전도 아니고, 10분 전도 아니고, 15층 엘리베이터를 내려서 전화를 하다니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만일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하니까, 비밀번호 알려달라고 해서 집에 있으려고 했단다. 더 무서운 소리다. 아니, 최소한 마음의 준비라도 할 시간을 줘야 할 것 아닌가. 그랬다면 청소라도 좀 더 말끔히 할 텐데. 혼자 사는 집에 어떤 눈 뜨고 못 볼 광경이 벌어질 줄 알고. 남자 친구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냐는 말에 엄마가 해맑게 '남자 친구가 있어도 집에 올 리는 없잖아'라고 한다. 아... 어머니, 딸년 나이가 이제는... 어릴 적에야 급 방문을 해서 청소는 잘하는지 잘 살고 있는지 감시를 한다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좀 어른 나이 아닌가? 게다가 부모님의 도움 하나 없이 집이며 살림을 모조리 혼자 장만한 나에게 엄연히 손님인데 이렇게 생경 맞게 방문하는 것은 딸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 아냐? 내 물건 쓰고 가져다 놓은 방향이 바뀌는 것도 신경 쓰여서 사무실 나의 비품에는 모두 '이혜미' '이혜미' 초등학생처럼 이름을 써놓고 다니는 나인데, 집에 와서 내 허락 없이 베란다 청소며, 화장실 하수구까지 다 들여다보고 청소해 주더니 하수구 머리카락이 남자 것처럼 짧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왜? 난 결백했는데?)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방문에 급히 갈 식당을 알아보고 내일 스케줄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하는데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게다가 다음 날 취소도 할 수 없는 예약이 세 개나 잡혀 있어 부모님을 모시고 관광 조차 할 수 없었기에 더욱 화가 났다. 자꾸만 본인들 신경 쓰지 말라고, 내일은 서울 사는 동생 집에 또 말.없.이. 급 방문을 한다는 말에 그러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한 후 동생에게 부랴부랴 연락을 했다. 부모님이 15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에게 연락하고 집에 '쳐들어왔다'라고 하자 동생이 웃겨서 데굴데굴 구른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계획적으로 사는 인간이냐 하면, 매일 내일 할 일을 스케쥴러에 체크하고 습관적으로 시간 단위로 할 일을 정해놓고 처리하는 편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벌여놓은 일에 비해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달리므로, 바쁠 때는 여러 달 친구 한 명 못 만나기도 한다. 그런 나를 알기 때문에 더욱 신경 쓰지 않게 하고 싶다는 엄마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굳이 거실에서 이불 깔고 주무시겠다고 하는 부모님을 안방에다 밀어 넣고 먼저 잠든 부모님을 챙기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잠시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감사하다. 무엇보다 여기까지 차 끌고 먼 길을 달려서 와 준 아빠 엄마의 건강과 체력이 감사하다. 여행보다 반복되는 일상을 좋아하고 외박을 싫어하는 부모님이 여기까지 와서 딸네 집을 들여다보고 가는 것은, 우리가 명절 때 부모님 집을 가야 하는 약간의 의무감 같은 느낌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내가 아빠 엄마 딸이라서 그 기분이 뭔지 아는데. '집에 가야지' 하고 결심했다가 '이번에는 그냥 오지 마라' 하면 자유시간 생겼다고 신나 하는 나니까.
다음 날 동생이 있는 서울을 한 시간도 넘게 달려서 다녀오는 것도 그저 감사했다. 앞으로 아빠가 몇 번이나 더 운전을 해서 멀리 있는 딸네 집에 급작스런 방문을 하실까. 예전에는 아빠가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운전하고 경남에서 강원도까지 차를 끌어도 당연한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아빠가 무척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던 건지, 운전을 장시간 하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번 여행이 더욱 놀랍기도 했다. 동생 집에서 하루 더 묵고 간다는 말에, 마침 동생 집이 송파구라,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을 잡아드렸다. 하루는 편하게 주무시고 가시라고. 아빠는 또 정색을 하며 싫어했지만 아빠 엄마가 언제 한 번 좋은 호텔에 묵어본 적이 있었나 싶어 밀어붙였는데 결론은 그래서 너무 만족하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부터 부모님이 올라오시면 하나씩 차례로 서울의 좋다는 숙소를 돌아다니며, 해외여행도 즐겨하지 않은 우리 가족의 가족여행을 호캉스로 대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동생 서울 집에 들렀다 창원에 내려가는 길에 다시 충청도의 우리 집에 들러 점심을 사주고 가셨다. 가족들이 주말에 만나 쉽게 밥 한 끼 먹는 거리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막상 가까이 살면 또 자주 모이지도 않겠지만,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는 다르다.
일 하면서 이런저런 신경 쓰이는 행사들을 많이 진행하지만 이렇게 바짝 긴장했던 일도 많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이렇게 가족들이 만나고 함께 자고 밥 먹고 가니 참 좋았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꼭 미리 이야기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계획을 해서 만납시다. 그리고 이 황당함은 꼭 알게 해드리고 싶다.
그러니까 이제 나도 다음부터 연락하고 집에 내려가나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