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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Dec 07. 2018

왜 모두 동생만 예뻐했을까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생겼다. 동생이 태어난 것이다. 우리 집에 온 그 조그마하게 꼬물대는 생명체에 나는 완전히 반해버렸다. 갓 태어난 어린 동생은 눈코입이 오밀조밀하게 인형처럼 예뻤다. 동그란 눈을 깜빡거리며 누워 있는 것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한정 없이 시간을 보냈다. 목욕을 시키고, 우유를 먹일 때에도 나는 뭐라도 하나 거들어 보려고 난리를 피웠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 나는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다. 그런데 예쁜 동생 곁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며, ‘이제 내 사랑은 변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기였던 동생과 놀고 싶어 동생이 걷는 꿈을 꾸기도 했다. 동생이 첫 세 발을 떼었을 때 내 그림 일기장에 유난을 떨며 그 이야기를 써놓았다. 친구들과 노는 건 뒷전이었고 친구들과 놀 때에도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친구들이 아기였던 내 동생을 한 번 만져보고 싶어 앞다툴 때는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 눈에만 예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부모님의 눈에도 막둥이의 커가는 모습은 여간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때인가부터 나는 더 이상 어리광을 부릴수 없었다. 맏이의 자리를 떠맡으며 동생에 대한 책임과 양보를 다해야 했고, 동생은 괜찮고 나는 안 되는 불평등한 일들이 많아졌다. 사춘기가 되어 갈수록 점점 그 강도와 내가 느끼는 서러움의 크기는 커졌다. 내가 예민한 사춘기 었을 때 동생은 한창 귀여울 초등학교 저학년생이었고, 동생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부모님은 까르르 넘어갔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에는 아기였던 동생 때문에 이미 다 큰 아이 대접을 받았는데 말이다. 공부하라고 내 방에 격리된 나는, 밤마다 거실에서 나를 뺀 가족들이 알콩달콩 하는 소리를 들으며 외로움을 삼켰다. 아무 이유 없이도 서운하고 섭섭한 사춘기 시절에 동생은 나의 모든 원망을 받는 대상이었다. 심술은 기본이고 신경질을 내고 때리기까지 했다. 사랑의 매라며 말이다. 동생은 나와 둘이 있는 시간을 점점 싫어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내 마음의 상처가 동생에 대한 편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첫째로 태어난 것은 어찌 보면 억울한 일이다. 옛날에야 장남이면 집안의 사랑이라도 독차지했지만 요즈음 엄마들은 커뮤니티에 이런 고민을 올려놓기까지 한다. 첫째가 섭섭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둘째가 태어나고부터는 첫째가 걸리버같이 보인다고. 동생과 나는 터울도 많이 났으니, 아마 부모님이 마주한 걸리버적인 느낌은 더욱 컸을 것이다. 게다가 처음 부모가 된 서투른 부모님의 실수를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사람도 나였다. 둘째는 모든 것이 유연해진 다음이라 첫째보다 원만하게 가는 경우가 많다. 여동생이 있는 언니들은 말한다. 엄한 아버지의 통금과 외박, 연애의 자유를 나는 정말 힘들게 얻었는데 봉인을 해제하느라 힘쓴 건 나고, 여동생은 그 혜택을 너무 거저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둘째도 고충이 많았던 것 같다. 늘 부모님의 관심은 언니였다고 한다. 집안 어른들도 언니만 챙기고 둘째는 공부 잘하냐는 한마디도 물어봐 주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그냥 서로 질투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언니라 힘이 더 세니 동생을 구박했던 것뿐이다. 나는 늘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아빠도 어디 나가면 늘 동생이 아닌 내 자랑을 하곤 했다. 동생에게는 성적에 대한 압박은 없었지만 그 대신 기대조차 없었다. 초등학교 때 뭘 자꾸 깜빡 거리는 덜렁거리는 동생 성격을 보고 아빠는 동생을 “꼴통”이라고 불렀다. 성급하게 지은 별명이었다. 큰 딸은 공부시키고, 작은 딸은 놀게 내버려 두라고 했다. 그런데 원래 육아란 부모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 그 압박을 못 이긴 나는 결국 공부를 열심히 하는 대신 운동으로 전향했고, 아빠의 잘못된 기대를 배신하고 싶었던 동생은, 꼴통이라는 말에 도리어 자극을 받아 공부에 몰두해서 무려 서울대학교에 골인했다. 독한 것. 내 동생 같은 아이를 두고, 원래 둘째가 독하다는 말이 나왔나 보다. 그 독함은, 어리광 부리고 싶었던 내 욕구만큼이나, 인정받고 싶은 둘째의 욕구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장자 편애가 심했던 옛 시절엔 더했을 것이다.


 어릴 땐 몰랐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처럼 동생만 모든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했으니. 나도 언니는 처음이라, 내 입장만 생각하고 동생에 대한 아량이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짠하다. 내 등쌀에 시달리느라 어렸던 동생의 유년기가 얼마나 고달팠으랴. 그 와중에 동생은 언니 비위를 맞추려고 말도 더 많이 걸고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 모습이 흡사 아빠와 내 사이를 보는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아프다. 아빠도 퉁명스럽게 대했던 나에게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 많았을까. 커서 종종 느끼는 아빠의 애정 어린 행동은, 동생에게 보상해주고 싶은 내 마음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자꾸 동생에게 용돈을 주려고 한다. 동생에게 왜 그리 유난스러우냐고 한다면 어릴 적 동생을 많이 울린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가끔 옛날에 미안했던 기억이 문득문득 나면 지갑이 그냥 스르르 열린다. 어릴 때 잘 데리고 놀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이다. 자꾸만 자식에게 더 못 줘서 안달인 부모님의 마음이 이럴까? 부모가 막내를 예뻐하는 이유는, 막내와 살 수 있는 시간이 가장 짧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어릴 적에 늘 들었던 말이, 나는 6년 동안 부모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동생은 그럴 수 없으니 내가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부모님이 동생만 예뻐한다고 하면서, 나는 과연 아빠와 엄마를 공평히 사랑했던가? 아빠를 더 잘 따르고 애교 많은 둘째에게 한마디라도 더 달게 하는 아빠의 말투가, 첫째 딸 둘째 딸인지를 떠나 인지상정이었던 게 아닐까. 나도 어릴 적부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어보면 아빠 상처 받게 엄마만 좋다고 여러 번 그랬으면서 아빠의 외사랑만 바랬던 것도 굉장히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아빠와 나는, 서로가 더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면서 평생 눈치싸움만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요즘은 동생보다 내가 더 아빠랑 말이 잘 통하는 것 같고, 동생보다 내가 아빠랑 통화도 좀 더 오래 하는 것 같고, 아빠가 동생 말보다는 내 말을 더 잘 들어주는 것 같다. 엄마도 동생이랑은 아직도 티격 거리는데, 나와는 요 몇 년 새 한 번도 큰 소리를 낸 적이 없고, 부탁을 할 일이 생기거나 마음속의 이야기는 꼭 나랑 하니 분명 동생보다 나랑 더 친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좀 이긴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왠지 동생이 불쌍해서 내가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말이다.   

 이만큼 커도 아직도 이런 계산이나 하고 있다니, 여전히 사랑에 목마른 부모님의 딸일 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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