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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Dec 14. 2018

부모님에게 진 가장 큰 빚

 내가 부모님 집에 내려가면 온 집안이 분주해진다. 아빠는 내 기차 시간에 맞춰 퇴근시간을 조정하고, 엄마는 아무리 대충 먹자고 해도 장을 푸짐하게 봐 놓는다. 내 이부자리도 준비되고 잠옷도 깨끗이 빨아 세팅된다. 집에 워낙 짧게 머물다 가니 엄마는 다른 일정을 일부러 취소하고라도 나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신다. 엄마 친구들의 전화에, ‘응 우리 딸이 집에 와서’ 라며 거절한 것을 직접 들은 적도 몇 번 있다. 

 소파에 기대어 티브이라도 보려고 하면 등에 베고 있는 쿠션 높다니, 보조 쿠션을 끼우는 게 낫겠다니 어김없이 잔소리를 하신다. 마룻바닥에 앉아 있으면 방석을 깔거나 이불 위로 올라오라는 둥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두 분이 교대로 간섭을 하시는 것이 다반사다. 과일을 깎아 먹을 때도, 포크까지 찍어서 내 손에 쥐어 주시니 세상에 어디 가서 이런 공주 대접을 받아볼까 싶다. 그렇지. 나는 아빠 엄마의 공주였지. 여느 집 자식이든, 자식이 그 집안의 서열 1위가 되는 일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부모님의 평생을 생각해 보면 나만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쓴 날들이 참 많았다. 중요한 시험을 치르는 날에는 며칠 전부터 함께 컨디션 조절을 해 주며 시험 아침 날에는 나보다 더 빨리 눈 떠 뒤치다꺼리를 해 주셨다. 시험 시간이 한 시간 한 시간 끝날 때마다 시계를 보며 마음 졸이고, 시험이 끝나면 고생했다며 따뜻한 저녁밥을 차려 주셨다. 집안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였다.

 지금도 서울 집으로 다시 돌아오려면 엄마의 손발이 얼마나 분주한지 모른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주섬주섬 담는데 화장품부터 식기들, 영양보조제, 스카프 한 장 까지 더 못 끼워 줘서 안달이다. 그 짐 가방을 내가 직접 싸는 것도 아니다. 엄마가 손수 정리하고 계신다. 한두 번 당한(?) 후로는 아예 바퀴 달린 캐리어를 꼭 끌고 가는데, 갈 때는 빈 수레가 요란하게 울리지만 올 때는 늘 터질 것 같이 빡빡하게 채워진다. 아무리 바퀴가 달렸지만 유자차나 참기름과 같은 무거운 것들이 잔뜩 든 가방은, 끄는 것도 버겁고 난간을 오르내릴 때, 택시를 타고 내릴 때 이것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서울 가는 여정이 만만치 않다. 참, 종종 짐이 많을 때는 택배로도 보내 주신다. 그러면 택배 박스가 될 만한 종이박스를 찾아 마트까지 직접 가서 구해 오신다. 택배를 받아보면 완충제를 하려고 수건이며 행주 등을 빼곡하게 끼워 넣어 놓은 모습에 눈물샘이 터지곤 한다. 

 얼마 전에는 부산에서 강의할 일이 있었는데 엄마가 강의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따라오셨다. 무척 더운 여름날이었다. 더 이상 설명 안 해도 그림이 그려질 만큼 엄마는 하루 종일 나의 매니저 역할에 여념이 없었다. 강의하고 온 사람은 나인데, 집에 돌아온 후 엄마가 먼저 쓰러져 잠들었다. 아주 어릴 적 연극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날도 엄마가 새벽부터 내 머리를 스프레이로 고정시켜주니, 화장을 해주니 부지런을 떠시더니 나보다 먼저 잠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별로 극성스러운 축에도 못 끼는 엄마다. 딸이 서울에 있다고 해도 일 년에 한 번을 와 보지 않거니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종종 연락 없이 한참을 지낼 때도 많다. 특히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선생님 면담을 가장 두려워해 학교 근처에 그림자도 안 비치던 엄마다. 이런 ‘쿨한’ 우리 엄마조차도 이렇게 하루 종일 나를 위해 보낸 시간을 모으면 엄마의 청춘이 되어 버리는데, 보통의 엄마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식에게 끝없이 희생하는 것일까. 

 아빠의 젊은 날을 생각해 보면 적성과 취향에 맞게, 꿈을 위해서 일을 했던 것이 결코 없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했다. 우리 아빠는 정말 당신의 모든 시간을 돈 버는 데에만 썼다. 회사만 열심히 다닌 것이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식 교육에 아낌없이 몽땅 쏟아부었다. 아빠 인생을 되돌아보면 특별한 것이 없다. 가족을 위해 회사 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아빠가 휴대폰을 사용하며 메신저 별명을 ‘나만의 색깔’이라고 써놓고 도통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고 있다. 아빠는 지금이라도 아빠의 색깔을 찾고 싶으신 걸까? 지금 와서 나만의 색깔을 찾는 게 쉬운 일일까? 언제쯤이면 아빠는 아빠의 색깔을 찾게 될까?      


 부모님에게 진 가장 큰 빚이 있다. 바로, 부모님의 청춘을 먹고 자란 것이다. 아빠 엄마의 수많은 시간과 돈은 다 나를 위해 바쳐졌다. 그 세월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내가 무얼 한다고 부모님의 흐른 세월을 되돌릴 수 있을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사람이고, 가장 잘해주고 싶은 사람이고, 내가 돌봐주어야 하는 사람이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이 왜 점점 사라지고 있을까. 왜 우리는 우리 생각밖에 못할까. 이 시대의 효는 어디로 간 걸까. 왜 ‘부모님께 효도도 하고 싶고’ 라며 희망사항 밖에 말하지 못할까. 하고 싶으면 하면 되잖아.     

 살다 보니 못 해 먹겠다 싶은 일도 많고 살기 버겁다는 생각도 수시로 든다. 이 모든 것을 참아내고 삼십 년 넘게 반복되는 회사생활과 반복되는 육아를 견뎌 오신 부모님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이불 밖조차 위험한 이 험한 세상에서 지금까지도 물심양면 좋은 것만 구해다가 내 몸 구석구석 채워주고 계시니, 그 힘으로 나도 굳세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응당, 효도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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