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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05. 2018

천하의 불효녀 심청


 <심청이 무슨 효녀야?>라는 책이 있다. [바람의 아이들 / 이경혜 / 2008년] 책의 저자는 어렸을 적 별생각 없이 들었던 심청전 스토리를 부모가 되고 다시 보니, 아이가 심청전을 읽고 효도에 대해 잘못 이해할까 봐 염려가 되었다고 했다. 당연하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불효는 천하제일의 불효인데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인당수에 몸을 던졌으니, 남아 있는 아버지에게는 뒷목 잡고 쓰러질 일 아닌가.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동화였으니까 심청이는 죽지도 않았고, 용왕님이 전국의 장님을 다 모시고 와서 잔치를 벌여 결국 아버지가 눈까지 뜨게 되었다는 해피앤딩으로 막을 내리지만, 사건을 기사처럼 나열해 본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 급의 엽기적인 일이 된다. 뭐, 신데렐라가 호박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갔다는 말도 당연히 동화이니까 상상의 장치가 가미된 것이겠지만, 우리가 동화나 드라마로 받는 영향을 생각해 보면, 심청의 이야기를 들은 어린아이들에게 효도라는 것의 의미가 잘못 전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 중에, 무언가를 해야 효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효도의 본질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고,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이 부모님이 가장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자식이 용돈을 건네거나, 자식의 형편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도 선물을 해온다면, 그것을 받은 부모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에 나름대로 수입이 생겼다며 부모님께 하던 작은 선물이, 이내 아빠의 용돈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랬던 것이구나 하고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러면 나부터 제대로 하려면, 내가 힘든 상황에서는 잠시 효도하지 않아도 되나? 이것은, 과연 나의 부모님이 살면서 힘든 때마다 나를 등한시했던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이때는 센스가 필요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것을 우리가 몸소 느끼지 않고 곱게 자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자. 살면서 힘듦 없이 걱정 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행복이 얼마나 가겠는가. 다들 짐을 짊어지고 살면서도 그 속에서도 희망과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만일 내가 먹고살만한 때를 찾아 효도를 하겠다고 기다린다면 그 효도의 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에게 작은 용돈 봉투라도 건네자는 말은, 부모님이 내 용돈 없이 살기 부족할까 봐 걱정되어서만이 아닌, 그래도 내 자식이 어른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며, 부모에게 용돈 봉투를 내밀만큼 여유 있어졌다는 뜻이며, 다시 한번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자식이 준 용돈을 한 푼도 손대지 않고 책상 서랍 속에 차곡차곡 모았다는 부모님의 일화가 많은 것도 이 까닭이다. 기쁜 마음으로 자식이 주는 봉투를 받지만, 봉투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 꼭 그런 일이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끝난 후 모여 앉은 가족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장례식에 와 고생할 아들 손주 며느리들에게 나눠 줄 백 만원씩 넣은 봉투를 준비하셨다. 아홉 형제에 며느리, 사위들까지 챙기려면 그 액수가 적지 않았다. 평소 자식들의 용돈 봉투를 고이 간직하고 계시다가 마지막 가는 날 다 돌려주고 가신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봉투를 받은 이모, 삼촌들의 눈물샘이 터진 것은 본인도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의 그 마음을 더욱 잘 헤아려서 그랬던 것이리라.      


 같은 맥락으로 힘든 것을 부모 모르게 하는 것 또한 효도다. 아빠는 대가족 맏형이었는데, 동생들이 군대에 갈 때마다 앉혀놓고 당부했다. 절대 휴가 나와서 부모님께 군대가 힘들다는 말 하면 안 되고. 요즘 군대는 밥도 잘 나오고 기합도 안 받아서 생활하기 편하다고 말하라고 강조했다. 자식이 궂은 고생을 한다는 것을 알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쓰라릴까 해서 한 말이었다. 착한 삼촌들은 아빠의 말을 잘 따랐고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군대가 그렇게 힘들지 않은 곳이라고 진짜로 믿으셨다! 80년대, 3년 꼬박 복역했던 시절이었고, 위계질서와 제반시설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열악했던 시절이었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레 푸념이 나올 법도 한 나이인데, 아빠도 20대였으면서 어쩜 그렇게 빨리 철이 들었던 걸까.     


 반면에 얼마 전 결혼 한 친구가 엄마한테 하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 본인은 엄마랑 둘도 없는 친한 친구사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엄마가 일방적으로 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결혼하고 더 엄마와 가까워졌다는데 그건 결혼하고 더 엄마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찬도, 청소도 해주고 애도 봐주는 엄마가 한없이 고맙다고 한다. 엄마가 없으면 어쩔 뻔했냐고 한다. 나는 왠지 친구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얼마 전에는 아침부터 시어머니에게 한 소리 듣고 엉엉 울며 친정엄마한테 전화해서 한풀이를 했다고 한다. 하소연을 실컷 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더라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욕을 한 바가지 해주었다. 아침부터 우는 딸의 전화를 받은 엄마의 하루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딸의 전화 벨소리에 엄마는 과연 반갑고 기쁘기만 할까. 이런 자식이 의외로 적지 않으며, 그들은 이것이 불효인 줄도 모르고 오히려 ‘부모님과 스스럼없으니 이러지’라며 자랑스러워한다?!    

       

 부모는 자식의 탄생과 동시에 시시각각으로 마음 졸여하며 자신이 낳은 생명체에 대한 부담을 평생 짊어지는 사람이다. 자식과 관련된 아주 작은 일에도 민감해하고 마음 쓰는 사람이 부모님이다. 한 시도 자식에 대한 걱정에 마음 놓은 적 없이 말이다. 효는 줄어들고 있지만 자기 자식에 대한 애착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효도하려면 심청이처럼 죽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한다. 심청이 이야기에서 건질 것이 있다면, 혼절한 심청의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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