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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Oct 12. 2018

부모님은 무료 자유이용권이다?

 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나는 아직 모른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 남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생김도 성격도 모를 아이를 낳아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어릴 적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낯섬을 전제로 한, 내가 만들어야 할 나의 새로운 가족 안에서 아마 나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들에게 헌신하고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팁을 친구들과 공유할 것이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하여 수백 권의 육아책을 뒤적거리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낼 것이다. 수많은 시간과 엄청난 액수의 금액이 또한 들어가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내 평생을 바칠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하겠지. 가족이 삶의 원동력이고 가족을 위해 달린다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로 안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들이듯이, 나에게 온 정성을 쏟아준 가족이 있다. 있는 줄 알고 소중한 줄도 아는데 그냥 알기만 할 뿐인 가족이 있다. 평생을 살면서, 부모님은 나의 자유이용권이었다. 놀이공원의 불이 꺼질 때까지 아무 기구나 마음대로 탈 수 있는 것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음껏 쓴다. 놀이공원의 하루 자유이용권은 비싸기라도 하지, 나는 어떤 대가를 치렀나. 예전에야 나이 든 부모님을 부양이라도 했지, 요즘 청춘들이 어디 부모님 노후 책임질 생각을 하던가? 이담에 커서 부모님에게 효도하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요즘은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제 앞가림만 잘 해도 효도라고 하는 것이 전반적인 정서가 되어버린 것 같다. 혹시 나는 이만큼 컸는데도, 여전히 옆집 아빠와 비교하며 자꾸만 더 내어 놓으라고 떼쓰는 자식은 아니었던가?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고생스럽게 키운 후,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애지중지 키우며 줄곧 내리사랑으로만 끝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사람, 그중에 내 사람 아니겠는가. 내가 온 정성을 바쳐 키워야 하는 가족이 있는 것처럼, 온 힘으로 나를 믿어준 가족이 있다. 그 가족을 위해 과연 나는 무엇을 했던가. 언제부턴가 아빠 엄마 생각을 하루에 한 번도 안 하는 것 같다. 바쁠 시간에 가족에게 문자가 오면, 일하는 시간인데 말을 거는 것이 괜스레 짜증도 났던 것 같다. 친구나 애인이었다면 반색을 했을 거면서. 가족에게 뭔가를 해 준 적은 거의 없을뿐더러, 무엇을 보고 ‘우리 아빠가 좋아하던 거였지’ ‘엄마 사드리고 싶은 거다’ 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잘 없는 것 같다. 역시나 애인이나 남편, 자기 자식에겐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을 다하면서. 이렇게 거저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우리 부모님에게 달라고, 더 달라고만 아우성치고 있다. 어릴 땐 당연하고 귀여웠지만, 나이가 몇 살인데 언제까지 받을 텐가. 금수저의 자식과 자신을 비교하는 당신처럼, 당신 부모님도 비교당하고 있을지 모른다. 친구네 딸은 아빠한테 뭘 해드렸다더라 하며 말이다. 자식 앞에서 내색을 할 것 같은가? 그 앞에 괜히 주눅 들어서 그 와중에 내 자식 자랑할 거리를 찾는 우리 아빠, 엄마가 마음 쓰이지 않는가?           


 생각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는 나도 분명 아빠 엄마를 정말 좋아하던 아이였다. 엄마 아빠 없이는 못 살 줄로만 알았다. 아빠가 집 앞 슈퍼라도 나가면 따라가고 싶어 안달을 했고, 엄마가 어디 갈 때 나를 놓고 갈세라 치맛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엉엉 울 때는 엄마한테 안겨서 우는 것이 제일이었고, 동네 친구들과 놀 때 아빠가 멀찍이 앉아 있어주기만 해도 그 옆을 뱅글뱅글 돌며 좋아했다. 그랬던 아이는 언제부터 부모님을 까맣게 잊은 걸까. 정말 머릿속에 부모님의 자리가 남아있지 않은 걸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부모님이 그 많은 교육비를 들여 공부를 시켜 주셨는데, 공부를 열심히 한 나는 또다시 엄마가 되고, 나의 딸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이것저것 시켜주어, 그 자식은 또다시 그 자식밖에 모르고… 문득, 인류는 온통 자기 자식을 키우는 데에만 인생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렬로 앞만 보고 달리는 꼴이다. 한 번 뒤돌아보자. 부모님이 아직 계시다. 전화 걸 부모님이 있고, 찾아갈 부모님이 있다면 그게 어디인가. 곧 이 소중한 시기가 지날 테니 있을 때 쟁취해서 최선을 다하자. 내 원가족을 위해 나는 과연, 관계의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돌이켜보자.          


 천하의 불효자와 결혼하라는 말이 있다. 남편이 부모님을 너무 챙기면 힘들다는 것이다. 너무 편파적인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 말이다. 부모님에게 못하는 사람이, 나에게는 잘할 것 같은가. 내가 주름이 생기고 머릿결도 푸석해져 더 이상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어지면, 남편은 부모님에게 했던 그대로 나에게 해 줄 것이다. 우리 아빠는 효자다. 말끝마다 할머니와 형제들을 챙기고, 때론 우리 가족보다 더 챙겨 가끔 엄마를 서운하게 했다. 그런데 주름이 생기고 눈이 어두워지고 젊을 때보다 말도 많아지고 살도 많이 찐 엄마를, 그래서 아빠는 무척 사랑해 주신다. 여태 생일 때마다 근사한 외식에 꽃다발에 보석 선물을 꼬박 해주셨고, 봄에는 엄마가 좋아한다는 산나물을 직접 따다 주지 않나, 때론 엄마를 골려 준다며 5만 원짜리 지폐를 걸고 가위바위보로 돈 따먹기도 하며 지내는 것이 신혼집 부럽지 않다. 게다가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던 아빠를 보고 자란 나와 동생이 얼마나 부모님 생각을 살뜰히 하는지 모른다. 얼마나 부모님을 생각했으면 효도를 주제로 글을 다 쓰지 않는가. 

 아옹다옹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더 잘하자.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지만, 세상이 준 가장 고귀한 자유이용권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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