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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SS Sep 18. 2016

詩 밤이 길어지는 구월

사는게 뭐라고 160917




밤이 길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밤의 목과 귀, 손가락, 다리가 길어진다

어디까지 길어지나 했더니 이 도시의 모든 도로를

덮어버렸다 자동차들은

그 위를 지나간다 

차 안에는 다행히 운전자가 있다


밤이 길어지니 서운하냐고

누가 물었다 나는

서운하기보다는 이 계절과 친해지려면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밤이 입고 있던 옷을 빨아주려고

가까이서 보니 뭔가 묻어있었다

그것은 나뭇잎의 초록, 하늘의 파랑, 연필심의 검정 그런 것들

내 손에 닿으면 내 손에도 그것들이 묻었다

그것이 더럽다고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는 어떤 여자가 쓴 시를 읽는다

살면서 내가 먹었던 핏덩어리들이 내 위장에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내가 쓴 문장들은 모두 그것들의 울음이다

어서 죽어 밤이 되려고 

밖에 나갔다

밤은 나를 꼬옥 안아주겠지

나는 밤의 가슴 위에 서 있다

겨드랑이의 털을 이불 삼아 덮고 잔다


나의 그림자가 나를 완전히 삼킨다

어둠은 어둠에게로

밤은 밤에게로 스며든다

잠들기 좋은 밤이다.




-(黑愛, 밤이 길어지는 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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