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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Jun 25. 2019

여름방학, 시간 조각모음 시작

마지막 직업, 인간 #08


6월 마지막주 월요일,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15년만의 여름방학이다. 그 기간 동안 내게 여름휴가는 있었지만 방학은 없었다. 물론 올해도 여름휴가는 갈 예정이다. 오늘도 출근은 한다. 그래도 어제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회사생활을 하며 대학원을 간다는 것은 돌아보니 쉽지 않았다. 겨우 1학기가 끝났을 뿐이었는데 마지막 2주간 세 편의 기말에세이를 쓰면서 문득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좋았고 좋았다.




출근은 하지만 여름방학


묘한 동거다. 출근과 방학. 등교와 휴가처럼. 써놓고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나의 애티튜드는 일단 광고방송으로 시작했다. "나 오늘부터 여름방학이야!" 답변은 중요치 않았다. 그 말을 할 때마다 여름방학이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이 좋았다.


어제도 분명히 나는 회사에 있었고. 퇴근이 20여분 남았을 때까지 정신 없이 달렸다.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서 마음이 노래했다. '오늘부터 여름방학이야'




다시 시간부자로 한 걸음


출근은 하지만 여름방학이다보니 시간을 더 잘 써야한다는 생각뿐이다. 이번 주말에는 뭐하고, 다음 주말에는 뭐하고 ... 일단 금요일 연차를 질렀다. 계획보다는 시간에 풍덩 빠져봐야 실감이 날 것 같아서 ㅎ


늘 시간부자를 동경하며 살아왔다. 돈을 향했던 적도 있었지만 몇 번의 이직으로 자아평가가 끝나면서 강박도 사라졌다. 그럴 바에야. 늘 동경해왔던 시간부자로 살자.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아무리 시간을 쓰고 써도 시간이 남아도는 여유가 넘치는 사람!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를 만난 후 얼마동안은 내게 여유가 최고의 가치였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친구도 만나러 갈 수 있고, 정처없이 걸을 수도 있고, 쫓겨도 쫓기지 않을 수 있다. 꼬맹이와도 더 즐겁게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여름방학의 시작과 함께 시간 조각모음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초단위로 쪼개 쓴 시간들을 다시 덩어리로 모으는 거다. 에엥?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 대 모아서 펑 하고 써버리는거다. 간단한 계획은 하겠지만 쪼개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푹신푹신하게 한데 모아서 적당히 널찍한 면적이 마련되면 그대로 풍덩.




마음부자의 선물


퇴근할 때 마음부자가 선물을 건넸다. "한 학기 고생하셨어요." 그 동료는 자타공인 우리 회사 최고의 마음부자다. 생일, 출산, 이별 등등 일상과 좀처럼 분간되지 않는 일상이벤트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선물을 전하는 산타클로스다.


고마움과 선물을 함께 가방에 담고 오랜 벗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셨다기보다는 술을 곁들였다. 그런 날이 있다. 술이 주사위 같은 날. 어제도 그랬다. 대화 한 챕터가 끝날 무렵 술이 한잔 들어가면, 마치 주사위로 진행되는 보드게임처럼 대화가 척척 척척척. 그런 날이었다. 소소하고 즐거운.


집에 돌아와서는 잠 들고 새벽에 눈을 떴다. 여름방학에 새벽기상이라니 젠장... 싶었지만 이미 버린 몸은 어쩔 수가 없다. 가방에서 선물을 주섬주섬 꺼내어 열었다. 그 안에 마음부자의 엽서, 마음부자의 책, 마음부자의 스페셜 선물이 한 가득 들어 있었다.


책의 첫 챕터를 읽었다. 공원 주차장에서 시작해 마트청소로 이어진 도경과 진경의 이야기였다. 다음 챕터 '사하맨션'이 너무 궁금했다. 오마이... 텐더로인 예멘 친구의 블루보틀 파트너 모험기도 읽어야 하는데.. "여름방학에는 소설만 읽을 거에요." 지난주 내 광고방송이 기억났다.


올레!!!!!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땡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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