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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Nov 30. 2019

팀에서 주4일 근무 실험하기

Friday Lab


오늘 세르주 라투슈 Serge Latouche의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를 읽었다.


천재 김상준 교수의 '미래사회의 도전' 수업 교재 중 하나였는데 프랑스 지성답게 가치관을 뒤흔드는 지점들이 많았다. 몇몇 구절을 음미하다가 최근 조용히 진행하는 실험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



집중할 '절대 시간'이 없다


시간은 9월의 어느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갑작스러웠던 8월 행사를 마치고 몸을 충분히 회복하기도 전에 또다시 11월 행사를 준비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급한 것들에 중요한 것들이 밀리고 있었다.


9월초에 팀워크샵을 가졌었다. 첫 팀원이 생긴만큼 팀의 목표와 규칙을 함께 다시 정할 필요가 있었다. 두 장의 전지에 매핑을 하고 to-do 리스트를 만들었건만 이런저런 일들로 몇 주째 진전이 없었다.


행사장 답사를 마치고 동료와 30분간 대화를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어떻게 절대 시간을 확보할 것인가 묻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가 멋진 제안을 했다. 금요일을 온전히 들어내는 것으로.




Friday Lab과 주4일 업무


10월 첫 금요일에 실험을 착수했다. 첫 시간에는 다시 우리 팀의 목표를 점검했다. 이 중에서 금요일을 제외한 주4일간 진행할 수 있는 것들은 기본업무로 분류했다. 해당 업무들은 대외적으로 퍼블리싱되고 내부적으로 보고와 협업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기획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들만 금요일 작업으로 남겨두었다.


금요일 업무시간을 'Friday Lab'이라 이름 붙였다. 경우에 따라 급한 업무를 해야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무조건 금요일 오전 시간은 함께 회의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회의보다는 '대화'에 가깝다. 물론 업무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파일럿 프로젝트나 단체 또는 업계로까지 주제가 확장되기 때문에 반은 대화의 성격이 있다.


대화의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늘 외부공간에서 미팅을 했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결정권을 팀원인 동료에게 부여했다. 시간은 근무시간이나 장소가 사무실이 아닌 카페와 같은 외부 공간이다보니 대화하기도 좋았다.




두 달이 지나고 무엇이 변했나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든 업무를 주4일에 맞춰 설계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회사의 근무시간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규칙을 회사에 공식 보고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부서의 동료들에게 굳이 비밀로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흘렸다.


대화의 시간이 고정적으로 확보되면서 생각과 역할의 경계도 많이 허물어졌다. 여전히 각자에겐 권한과 책임이 별도로 따라붙지만, 이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의 사안에 대해 각자의 관점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일상적인 관심사나 발견들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로 흘러들어 왔다. 커뮤니케이션 부서로서는 너무나 값진 시간이다.


한국에 주4일 근무가 언제 도입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는 근무시간은 계속 단축되어 나갈 것이다. 생산성이 수십배 높아진 것에 반해 근무 시간은 겨우 절반 정도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일 지상주의 사회는 자의반 타의반 지난 날로 흘러갈 것이다.


그 이후는 무엇이 찾아올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시간'은 정복될 수 있으며, 그 여정에는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결국 노동 시간을 축소한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다... 무엇보다도 생산지상주의적 비극의 중요한 요소인 '일'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차원, 다시 말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만들어내는 여가, 자유롭고 예술적이며 수공업적인 제작 활동을 하는 즐거움, 놀이를 위해 되찾은 시간에 대한 떨림, 성찰, 대화, 더불어 단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되찾을 수 없다면 명료한 탈성장 사회를 건설하지 못할 것이다.

<성장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까?> 2015, 민음사, 이상빈 역,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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