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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Feb 05. 2020

두 개의 언어로 일하는 힘

외국인 컨설턴트


올해부터 매주 월요일 외국인 컨설턴트가 출근한다.


그의 활동은 커뮤니케이션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우리 팀 소속이다. 원격으로 일할 때는 적당히 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은 회의 문화가 바뀌었다. 매주 월요일 부서장 회의를 마친뒤 팀에 공유를 하는데 이젠 영어로 해야 한다. 팀원의 조언에 따라 회의 때는 절대 한국어를 섞지 않는다. 때문에 필요한 것만 짧게 공유하려고 노력하게 됐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질문이 뒤따르면서 자연히 회의시간은 길어져버렸다. ㅠㅠ


다음은 점심시간 문화. 첫 날 점심시간을 안내하고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의 대답은 "그건 코리안스타일. 나는 1시에 샌드위치 먹을께(영어)"였다. 그 때 본부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리에서 샌드위치 먹으며 일하던 그 모습이. 나 또한 점심시간을 이래저래 실험해왔다고 자부했지만 점심시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신선한 리셋이었다.


여차저차 그의 업무를 위해 공통분모를 마련하는 선행작업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자료가 국문이었고 일부는 내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데 모아야 했다. 나는 그것을 Basic Box라 명명하고, 그 안에 담길 녀석들로 Factsheet, 캘린더(주요 행사, 퍼블리싱), 리소스(파트너, 사진영상, 예산), 컨택포인트 등을 추려보았다. 의기양양하게 시작했으나 어느덧 1월이 후르륵 넘어갔다.



2월 첫 월요일에 출근한 그는 다짜고짜 내게 온라인 영문 단체소개서가 있는지 물었다. 외부 미팅에 필요하다고 했다. 작년에 함께 기초자료를 만들었지만 행사다 뭐다해서 홀딩되었던 작업이었다. 미안했던 나는 당일치기 단체소개서 제작에 들어갔다. 미팅에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나온다기에 동일한 포맷의 두 개 언어 버전의 단체소개서를 만들기로 했다.


시간상 최대 3페이지로 한정했다. 먼저 국문 버전을 만들었다. 2년여 전에 제작한 리플릿 내용을 기초로 하되 계속 업데이트해온 PPT 내용과 최근 주요 화두를 버무려 2 페이지로 압축했다. 그리고 주요 사실관계를 정리한 표와 이미지를 투다닥 올렸다. 엇박자로 작년 기초 자료를 토대로 영문 버전을 만들고 검수를 받았다. 4시간만에 뚝딱해치웠다고 믿고 싶지만, 결국 점심을 거르고 종일 붙잡고 있었다.


두 버전은 동일한 흐름을 취했지만 세부적인 것들은 달랐다. 한국어 버전은 사실관계보다는 서사적인 맥락과 타단체와의 차별점을 강조했고, 영문 버전은 명료한 케이스와 국제사회와의 맥락적 연결을 부각했다. 어필하는 인플루언서도 달랐다. 하지만 백단의 표와 이미지는 동일하게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양쪽의 세계에 어필하는 강점을 취합할 수 있었고 더 단단한 교집합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두 개의 언어로 일한다는 것은 번역이나 통역과는 다르다. 그건 뒷통수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거울에 앞모습만 비추어 보다가 거울 하나가 늘어나며 뒷모습까지 함께 보는 것. 글로벌 원보이스와 로컬 보이스 사이의 시소 게임에서 단체의 미션과 강점을 재정렬하는 작업. 각자의 언어와 문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결국 정체성이라는 교집합을 다지는 작업인 것 같다. 시간이 걸리지만 충실하고 온전한 전진이다.



달의 뒷면


* 표지 이미지

https://www.theamericanconservative.com/dreher/transgender-cultural-marxism-liturgical-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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