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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Mar 21. 2020

조직개편을 웃어넘기는 팀의 자세

팀원의 마음


꼬박 3개월이 걸렸다. 연말에 조직개편 화두를 꺼내고 한참을 흔들고야 지난 주에 결정이 났다.



팀장 생각


초기 아이디어에서 나아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수 차례 조직과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지만 언제나 리셋이었다. 3개월의 제자리 걸음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터는 느낌이었다. 페소아 형님이 그만 체념하라고 조언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나대로 카드를 던질 상황이었다.


커뮤니케이션팀이 마케팅부에 흡수되는 소폭의 조직개편이었다. 재정독립을 위해 통합캠페인과 후원자 리텐션이 너무나 중요한 단계였기에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선은 구체적 목표 설정을 통한 협업시스템 구축이 베스트라 생각했다. 리더십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조직은 결국 차선을 선택했다.


조직개편 데드라인이 다가올 수록 팀원에 대한 걱정이 커져갔다. 나야 에이전시랑 대기업을 전전하며 다양한 조직의 입장과 계산들을 겪어왔지만 팀동료에겐 첫 조직개편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전사적인 대대적 개편이 아니라 우리만 팔려가는 그림이니 더더욱 그랬다.


불렛 버번



팀원 생각과 마음


그는 생각보다 더 서운하고 아파했다. 처음으로 조직개편으로 그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식 발표에 앞서 우리 팀에게 먼저 그 배경과 취지 설명을 요청했다.


조직은 나름 많은 배려를 담아 입장을 전달해주었다. 이어서 개편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내겐 더할 말따위 없었다. 의외의 직구는 팀원이 던졌다. 그의 질문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에도 두 팔을 기둥삼아 무너지지 않고 스트라이크존을 향했다. 나는 조직과 그, 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왜 커뮤니케이션팀이 마케팅부로 들어가야하나요?"

"제 상사는 바뀌는건가요?"

"이 체제는 얼마나 지속되나요?"


5~6개의 질문을 마친 뒤, 그는 끝으로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전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단체가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해당 팀에 소속된 한 사람으로서 제 마음은 너무나 서운하고 아쉽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맑은 종소리였다. 조직 목표를 우선시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절대 전할 수 없었던. 대신 전할 수도 없었던. 그래서 그의 마지막 말은 팀원이자 NGO 활동가로서 온전하게 그 만이 전할 수 있었던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뜻 깊은 자리였다.


비엔나 커피



팀의 마음


"저녁에 약속 있어요?"

"없습니다."


근무시간을 꽉 채우고 타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똠양꼼, 춘권, 간장설탕면, 씽 맥주를 나누었다. 스파이시한 이국적 음식과 발고 경쾌한 분위기는 신기하게도 기분을 업시켜주었다. 우울함과 절망감이 바닥을 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대화는 정반대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조직개편과 단체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이상과 밖의 세계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어디에 있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동안에는 즐겁게 헤쳐나갈 수 있다면 충분하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신기한 공명이었다. 대화는 즐거웠고, 함께 할 수 있는 팀원이 있음에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다. 이것이 팀장하는 맛인가 싶었다.


우리는 팔려간다. 하지만 조직의 결정따위 유쾌하게 웃어넘겨 버리기로 했다. 잔인한 4월이여 오라!


체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나 자신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그러면 나는 앞으로 영영
얼마나 고통스럽게 행복할 것인가!

- 페르난두 페소아 -


하루의 설계도, 에디시옹 장물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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