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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May 19. 2020

이직의 시간: 에이전시 vs. 인하우스

사이클과 포지션


호기심 많은 PR인에게 이직의 고민은 빠르게 찾아옵니다. 안팎의 주요 공중들을 상대하며 인생 리절트를 만들어도, 제대로 된 내부 평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고민은 더 커질겁니다.


이직을 고민하는 모든 후배님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일단 2년은 버티며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 2년은 이력서에  당당하게 쓸 수 있는 최소 단위이기도 하지만, 기본 사이클을 배울 수 있는 필수 기간입니다. 처음 1년은 어버버 하다가 지나갑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조직의 리듬에 내맡겨야 하죠. 2년차가 되면 지난 1년의 경험으로 좀더 익숙해집니다. 보고 체계, 업무 우선순위, 과업의 탄생과 소멸 등이 가늠이 되며 자신의 리듬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3년차입니다. 지난 2년의 경험으로 업무 숙련도가 올라가면서도 새로운 실험을 가미할 수 있습니다.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내외부 미팅에 독자성이 생기며, 새로운 제도나 활동을 제안할 수 있는 시기죠. 요청하는 동료나 제안을 검토하는 상사의 자세도 달라집니다. 성장하고 살아남은 3년차이니까요. 그래서 조직에서 3년차는 꽃 피우기 참 좋은 시기입니다. 꽃을 피워야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있다면 3년까지는 버텨보세요.


Avengers, Concept Art



에이전시의 힘은 ‘동료들’


에이전시(대행사)의 과업 사이클은 길어야 1년입니다. 이는 고객이 이용하는 서비스가 1년 단위의 '리테이너'와 그보다 짧은 '프로젝트'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AE(Account Executive)는 대부분 2~3개 리테이너 고객을 담당하며 1~2개 프로젝트에도 추가적으로 참여합니다.


에이전시의 강점은 PR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야근하다 쓱 고개만 들어도 2~3명은 기본입니다. 물론 업무 매뉴얼,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 젊은 조직문화 등의 차별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맨파워'입니다. 에이전시에서 유독 맨파워가 증대되는 이유는 PR 의 역할이 인하우스(조직 내 부서)와 다르게 영업과 연구개발이 혼합된 최전방 부서라는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매출을 책임지면서도, 성공 사례를 공유하고, 실험을 협력하니 일취월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동료들의 다양한 백그라운드는 관점과 상상력을 넓혀줍니다. 동료들 중에는 기자, PD, 작가, 대기업, NGO 출신은 물론, 디자이너, 이벤트, 영상 기획자들도 있죠. 분야를 넘나드는 동료들과 만들어낸 이종교배 결과물은 고객사를 자극하고 학계에도 화두를 던집니다. 또한 자신의 커리어 폭을 2차선에서 8차선으로 확장해주죠. 동료들은 엄청난 자극인 동시에 견줄 수 없는 자산입니다. PR을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꼭 한번은 에이전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Thanos, Avengers Infinity War



인하우스의 힘은 ‘끝판왕’


인하우스의 과업 사이클은 깁니다. 제가 몸담았던 대기업에는 PR 관점에서 두 가지 이슈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경영권 이슈였고 다른 하나는 국제소송이었죠. 견제세력은 소송의 형태로 판을 흔듭니다. 압수수색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6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죠. 이길 수 있을까 반문하며 신중하고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하우스에서는 '끝판왕'을 대면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모든 조직은 주기적으로 성장과 위기를 겪습니다. PR 실무자가 끝판왕을 만날 수 있는 시점은 위기 구간입니다. 끝판왕은 경쟁사가 될 수도 있고, 법원이 될 수도 있으며, 내부에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끝판왕에 따라 PR은 성벽이 되기도 하고 미사일도 됩니다. PR은 지원 부서에서 비상상황실의 핵심 부서 중 하나로 작동하며 '대변인'의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끝판왕에 맞서는 과정은 고독하고 책임이 막중합니다. 에이전시와 달리 소수의 PR실무자들이 판단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죠. 하지만 유관 부서와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하나의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리스크를 판단하는 안목과 강력한 협력관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내부 동료는 팀장이나 임원으로, 외부 동료는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동맹으로 발전합니다. 조직이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다면 끝판왕은 언젠가는 쓰러집니다. 끝판왕이 쓰러지면 한 세계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 겁니다.






Tip 첫 이직에 대한 아주 사적인 기준


첫 이직을 준비할 때 제가 세운 기준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세계 1위 제품, 둘째는 B2B 산업분야, 마지막은 오너 리더십이었죠. 그리고 가능하다면 마케팅보다는 전략 부서에서 일하며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세계 1위 제품’은 DNA 차원의 기준이었습니다. 어떤 분야든 세계 최고에 이르렀던 조직은 영업, 인사, 연구, 전략 등에서 남다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자세와 경험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반면에 ‘B2B 산업’은 제 기질을 고려한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소비재처럼 트렌디한 B2C 산업보다는 조용히 인프라를 구축하는 산업과 리듬이 잘 맞았거든요.


마지막으로 전문경영인이 아닌 오너 리더십을 채택한 이유는 장기적 시야 때문이었습니다. PR회사에서 일할 때, 한 외국계 기업이 저조한 실적을 이유로 임기에 관계없이 글로벌 CEO를 교체한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전문경영인이 있는 조직은 이익이 전부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책임감있는 오너 리더십을 기준으로 채택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앞의 두 기준은 PR 실무자의 측면에서 이렇다 할 도전적인 과업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기준이 저를 신세계로 몰아갔죠. 일개 홍보 실무자에서 직속 부서로 분리하며 IR, 대외협력 등이 결합되어 세포분열을 계속 해 나갔습니다. 돌아보면 PR인으로서 그러한 과도기를 겪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Avengers Land, Di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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