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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Oct 08. 2018

당신의 자립이, 나의 자유로

인도주의 활동가 시즌1 종료를 앞두고 #2

D-22



#1.


문득 초심이 궁금해졌다.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었다. 그 마음에서 얼마나 멀어졌나 궁금했다. 웬걸... 나는 그것을 거의 까맣게 잊고 있었다.


2년전 내 지원동기는 '당신의 자립이 나의 자유로'였다. 결혼후 아내가 전문직에 도전하는 선택을 지지하면서 내 삶은 많이 바뀌었다. 그녀는 자립했고, 그녀의 역량과 벌이만큼 나는 자유로워졌다.


그 경험을 확대 해석하고 싶었다. 내 삶 전반으로. 그래서 니체 형님을 따라 '나의 가장 먼 것을 나의 원인이 되게'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것이 인도주의였다.




#2.


나는 먼 곳의 나와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의 삶에 관계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들을 자립으로 이끈다면 그만큼의 세계의 자유 총량도 늘어날 걸로 기대했다. 그건 유효했을까?


모른다. 고작 2년으로는 알 수가 없다. 한 가지만 안다. 나는 그만큼 고독해졌다는 것을.


자유란 고독의 다른 이름일까? 출근 첫 일주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던 그 한 주를. 온갖 자질구레한 요청의 중심에서 그 누구도 관심없는 세계의 중심으로의 진입. 그것을 절감한 한 주.




#3.


내게 자유로운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저 알베르 까뮈의 '다정한 무관심' 정도였을까. 아니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시고 춤추고 사랑할' 경지였을까.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다만 며칠전 드래그퀸 팬티 블리스(Panti Bliss)로 살아가는 로리 오닐과의 만남을 통해 한 가지는 깨달았다. 내게도 팬티와 같은 '색깔'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립과 자유를 넘어 색깔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속한 세계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내 삶은 변하지 않는다. 그건 아주 잠깐,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 결국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내 삶이 바뀌어야 내 세계도 그렇게 된다. 삶은 결국 컬러인가보다.




#4.


공허하다 못해 텅빈 자신과 마주했던 십년전의 여름을 기억한다. 내가 배운것, 읽은것, 들은것을 제외했을 때 남은 내가 '0'이었던 순간을. 그 때 나는 두려웠고,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보다는 몇 걸음 전진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최초의 인간의 권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자유는 커녕 내 자립은 더 요원해진 기분이다. 선택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는 각오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번지수가 틀렸나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Solitude(고독)'을 듣는다. 내가 늘 자랑했던, 그래서 나누고 싶었던 '여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https://youtu.be/EVuNNv0FK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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