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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엉군 Oct 16. 2018

해외원조와 '정의를 위한 연대'

인도주의 활동가 시즌1 종료를 앞두고 #3

D-15



외부에서 NGO를 바라보던 시절, 나를 가장 두근거리게 했던 것은 시민사회의 연대였다. 일상적인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함께 대안을 만들어 가는 힘. 그 에너지는 늘 감탄스러웠다.



#1


추석을 앞둔 9월의 어느 저녁, 발전대안 피다에서 주최한 '사람이 꽃피는 발전' 행사에 참석했다. 5회차 주제는 '애드보커시'였다. 언제나 막연하게 나와 단체의 다음 도전이 될 거라 생각했던 영역.


네 단체의 담당자들이 패널로 올라 애드보커시에 대한 정의, 단체의 사업 비중, 구체적 활동내용, 향후 방향성에 대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 중에서 월드비전(남상은)과 참여연대(이영아)의 활동과 고민들이 꽤 깊고 인상적이었다.


요약하면, 분쟁피해지역에서 일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는 느낌. 때문에 구조적 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에 동참하는 '애드보커시'가 중요. 정부 원조정책과 분쟁취약국 연결 필요. 서명운동, 가이드라인, 공문접수, 워킹그룹, 정보공개, 질의요청, 성명, 이슈리포트, 의견서 전달, 방청, 입법, 법안파기 ... 등등


발언들을 들으며 한국의 국제구호단체의 애드보커시 담당자는 정말 몸이 열 개는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해외 재난을 예의 주시하며, 국제사회 메카니즘을 이해하고, 또한 국내에서 시민운동도 해야하는 처지인 것이니. 발표를 마치며 네 명의 담당자는 모두 애드보커시의 꽃은 '연대'라고 입을 모았다.


from Handicap International


#2


정의와 연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마미치 선생은 그의 책 <단테 신곡 강의>(안티쿠스, 2004)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정의는 기본적으로 분배의 정의이며, 상벌의 분배는 일률적으로 평등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 공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p.184)"라고 정의의 결을 짚어주었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그것을 연대와 연결시켰다. "요컨대 정의는 다른 세 가지 덕과 비교하면 개인의 특별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일이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 일어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정의다'라는 사회적 결집으로서의 '연대 solidarieta'를 낳기도 한다(p.564)"


from SBS



#3


해외원조의 정의에 대해 생각한다.


국제인도주의단체로 이직했을 때, 모 언론사 친구가 물었다. "사람들이 왜 해외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해?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난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스스로 "이제 우리도 세계시민이 되어야 하는걸까"라며 적당한 지점에 안착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내게 '세계시민'은 장거리 비행의 적당한 중간 경유지같은 느낌이다. 막연하게 아마 논리적인 도착지는 '분배의 정의' 근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분배가 부나 자원의 분배에만 한정되는 것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은 '최초의 인간의 권리'와 등을 맞대고 있는 듯 하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 너무나 부족하다. 함께 공부한다면, 구조적 문제를 함께 밝혀내고 구조적 해법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 길에서 우리는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절실하게 묻고 싶다.





'별 밤 바다', by 김정식 교수


지옥은 지하의 닫힌 장소이며 게다가 계층까지 있어 시계가 가로막혔기 때문에 아득한 조망이나 전망은 없다. 그에 비해 연옥은 저 멀리 내다보이는 전망이 있다. 그리고 그 전망 끝으로는 광할한 '바다의 일렁임'이 보인다고 한다.

<단테 신곡 강의>,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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