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이 와 있었다. 파리 전시회에서 핸드백과 구두를 주문을 한 스위스 바이어였다. 주문한 물건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담당직원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직원들이 해외로 보내는 모든 이메일에 나를 참조하기 때문에 나는 직원들의 업무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출장을 간 직원과 통화를 해보니 본인은 해당 바이어에게 확실히 물건을 보냈다는 것이다. 항공편으로 보냈기에 한참 전에 도착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상황을 빨리 확인하기 위해 해당 물품의 B/L(선하증권: 택배에서 사용되는 송장 같은 역할을 함) 번호를 가지고 항공운송회사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확인결과 해당 물건은 스위스가 아닌 스와질란드에 도착해 있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스와질란드? 처음 들어보는 국가의 이름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스와질란드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에 위치한 나라로 그전까지는 이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다. 스위스로 보내는 물건이 왜 스와질란드로 갔는지를 묻자 우리가 작성한 B/L에 국가이름이 스와질란드도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물건을 스와질란드에서 다시 가져와서 원래 목적지인 스위스로 보내야 했다. 소요되는 비용을 물어보니 현재 스와질란드 공항 창고에 보관되고 있어서 창고비용과 물류비용을 다 합하면 18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180만 원이라니!
큰 회사에서 180만 원은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스위스로 항공편 운송을 보내는 비용은 불과 몇 십만 원에 지나지 않고 스위스 바이어가 주문한 물량도 많지 않은데 이런 불필요한 물류비용까지 발생하게 할 수는 없었다. 운송회사는 우리가 실수로 나라이름을 잘못 기재했기 때문에 우리 회사가 그 비용을 다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일단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이것이 정령 우리 직원의 실수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B/L지에 쓰여있는 나라는 여지없이 Swaziland라고 나와 있었지만 나는 우리 직원이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담당직원의 컴퓨터에 들어가서 항공운송회사의 프로그램에 접속했다. 화물을 보내는 화면에서 받는 사람의 국가를 선택하는 메뉴로 들어가 보았다. 국가 이름은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었고 영어로 스위스인 Switzerland를 선택하려고 하자 바로 위에 Swaziland가 보였다. 아, 담당 직원은 Switzerland를 선택하려다가 실수로 바로 위에 있는 Swaziland를 선택한 것이었다. 우리 직원의 실수가 맞으니 추가로 발생한 비용을 우리 회사가 다 부담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문득 우리 부서에서 업무를 보다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항공으로 보내는 운송물의 B/L에 수기로 나라 이름을 한 번 더 적는 관행이 생각났다. 컴퓨터 메뉴에서 선택한 나라이름은 글씨가 작아서 우리 부서에서 관리하기에 불편했고 항공운송회사 직원에게도 편리하는 하는 우리 회사와 운송회사 간의 상호 구두로 약속된 방법이기도 했다(요즘 택배 물품의 송장 옆에 주소의 번지를 수기로 크게 쓰는 것과 같음). 나는 재빨리 해당 B/L지의 수기로 쓴 부분을 확인했다.
역시, 우리의 담당 직원은 큰 글씨로 명확하게 Switzerland라고 기재한 것이다. 부라보!
나는 이런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항공운송회사에 다시 전화를 했다. 나는 우리 직원이 운송사 프로그램 메뉴에서 나라이름을 실수로 잘못 선택한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수기로 기재한 나라 이름이 있는데, 운송사 직원들은 B/L지에 적힌 나라와 수기로 크게 기재한 나라를 더블체킹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따져 물었다. 그리고 우리 직원도 실수를 했지만 운송사 직원도 실수를 했으니 추가로 발생하는 운송료를 반반씩 부담하자고 제의했다. 검토해 보고 다시 전화를 주겠다던 운송사 직원으로부터 약 1시간 후에 연락이 왔다.
자기들의 실수도 인정하며 운송비의 절반은 운송사가 부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비록 직원의 실수로 불필요한 비용을 회사에 부담하게 해서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다는 것에 대해 안도와 위안이 되었다.
해외기획부에서의 회사 생활은 그렇게 크고 작은 일들을 겪어나가며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두 계절이 지나고 나는 F/W(가을/겨울) 시즌 판매를 위한 파리 전시회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메일을 확인하며 회사 업무를 하는 있는데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문자는 영국 대사관에서 온 것으로 영국 문화원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면접 날짜에 관한 것이었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면접 날짜를 확인하면서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이 날짜는 왠지 익숙한데..... 혹시? 그랬다. 그날은 내가 회사에서 파리로 출장을 가는 날 중 하루였다.
하필 출장 날짜와 장학금 면접 날짜가 겹치다니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퇴사할 것도 아닌데 갑자기 회사 출장을 가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장학금 면접을 위해서 회사에 반차나 연차를 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내 계획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혹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영국 문화원에 전화를 하여 나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면접 날짜를 조정해 줄 수 있다고 하는 것 아닌가! 즉, 면접 대상자들을 3일로 나누어 면접을 하는데 그 3일 중 원하는 날로 옮겨줄 수는 있다고 했다. 나는 파리로 3박 4일 일정으로 출장을 가는데 기존 면접 날짜는 그중 2번째 날로 내가 파리에 있어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내가 출국하는 첫 번째 면접 날짜를 선택했고 면접 시간도 비행기를 타기 전에 맞출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으로 부탁했다. 그렇게 가능하지 못할 것 같은 장학금 면접에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출장 가기 며칠 전 그러니까 면접을 보기 며칠 전부터 나는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회사 샘플 확인과 수출 단가 산정 등 출장 준비 업무로 바빴고 저녁에는 전에 다니던 게임 회사 동료를 만나 영어면접을 준비했다.
그리고 OO7작전도 짜야했다. 출장으로 출국하는 날의 비행기 시간과 공항에 도착해야 할 시간을 감안하여 영국 대사관(영국 문화원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이지만 영국 대사관에서 면접이 진행되었다)에 도착하여 면접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탑승을 해야 했다.
다행히도 영국 대사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항 리무진을 타는 정거장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결코 여유롭지 못했다. 여러 가지 장애물도 있었다. 나는 해외기획부 팀장으로서 회사의 모든 샘플을 내가 직접 공항으로 가져가야 했다. 내 몸 크기의 2배에 가까운 회사 짐을 대사관 안으로 들고 갈 수는 없었다. 또한 면접을 보기 위해 정장 차림을 하고 대사관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장을 입은 채로 공항에 도착해서 직원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해외 출장을 가는데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가면 왠지 다른 일로 의심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다.
007 작전에 나의 친오빠가 큰 공헌을 했다. 출장과 면접 전 날 나는 오빠에게 회사 샘플을 미리 주고 다음날 나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음날 나는 정장을 입고 영국대사관에 제시간에 도착하여 면접을 보고 나와서 지하철 화장실에서 정장을 캐주얼 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오빠가 가져다준 샘플을 들고 공항 리무진에 탑승한다는 계획이었다. 면접 당일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오빠의 도움으로 빠듯한 일정 안에 모든 일들이 신속하고 부드럽게 이어져 면접을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공항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 면접본 일만 떠올랐다.
'합격해야 하는데, 합격해야 하는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과를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데 나의 마음은 계속 면접관들과 나의 대화 내용에만 집착했다.
면접관들은 영국 대사관 상무부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중 하나는 직원 해고를 둘러싼 노사 간의 갈등에 관한 것이었다. 장학금 면접에서 왜 이런 걸 물어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내 생각을 얘기했다. 상무부의 면접관들은 사측을 옹호하는 주장을 펼쳤다. '나를 지금 시험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소신껏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한 후 면접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면접관 한 명이 "만약 이 장학금에서 불합격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나의 공부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을 정말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가 모아놓은 돈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의 답변이 계속 찝찝했다. 말을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출장에서 돌아와 며칠 후 장학금 면접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불합격".
나는 너무 속상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불합격이라니. 마지막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 실수였던 것 같다. 모아 놓은 돈이 없어서 내년에 영국 문화원 장학금에 다시 도전한다고 할걸...
하지만 후회를 한들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입시 준비를 위한 TEPS와 JPT시험부터 영국문화원 장학금을 받겠다고 IELTS시험과 영국 대학원 입학 신청서를 쓰던 나의 시간과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포기하고 말 것인가? 하지만 나는 영국에 있는 대학원에 이미 합격한 상태였다. 내가 결심만 하면 입학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모아돈을 돈을 전부 투자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나는 어학연수와 파견 근무에 이어 대학원 입학을 위해 세 번째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