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도회와 나의 이중생활_23.6.14
기도회는 뭐하러.... 울러 간다.
수요일은 아이 학교에서 기도회를 한다. 엄마들이 모여서 기도회를 하는데, 사실 뻔하다.(뻔하다... 라는 표현이 얼마나 신앙적이지 않는 표현인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태가 이렇기 때문에 <뻔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어제 밤에 또 술을 마셨다. 그리고 유투브를 오래도록 보고 잠을 잤다. 이상하게... 아이를 재우고 난 뒤, 각성이 되고, 밤에 자꾸 술 생각이 난다. 문제다. 아는데 최근 2~3일 술이 고팠다.
<죄송하지만, 당신 성격이 문제입니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말 요즘 그렇게 느낀다. 내가 별나구나. 그냥 그냥 살 수 있는데, 별나구나.
그런 밤을 보내고, 수요일이라고 또 꾸역꾸역 기도회를 갔다. 그랬더니 저번 기도회에서 엉엉 울던 한 엄마가 있었는데, 그 어머님이 그 곳에 계신다.
수요기도회도 참 별난 곳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다. 기도회라고 모든 걸 오픈하지 않지만, 오픈이 가능한 기준을 삼아 오픈한다. 삶을 나누고, 말씀을 듣고, 기도한다. 어려운 자리라면 어렵고, 쉬운 자리라면 쉽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기본적으로 중보기도의 자리인 만큼 기도해주겠거니 은연중에 생각해서인지 사람들도 쉽게 자기 얘기를 나눈다.
저번 기도회 시간동안 내 앞에 앉았던 한 엄마는 가녀린 몸으로 고상한 말과 행동을 하며 예쁘게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내 표현이 다소 고까운 것 같지만, 사실 나는 그분이 너무 예뻐보였음을 나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하'자만 얘기해도 눈물이 또르르 흐르고, 자기 얘기하다가 또 울고.. 말씀듣다가 또 울고.. 찬양하다가 또 울고..
그런 그분이 이번 수요기도회에 오신것이다. 그분은 성격도 참 밝고 싹싹하고 거침없고 솔직했다. 거침없게 살아온 이야기, 예수님 만난 이야기, 가족구원, 예수님 만나고 바뀐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등등 자기 얘기를 아주 쉽고 이해가 잘되게 이야기하셨다.
나는 수요기도회를 왜 간걸까?
처음에는 설렘. 그다음은 약간의 의무. 그 다음은 궁긍증?
기도회의 말씀이 좀 위로가 될때가 많았다. 자식을 키우다보니 약간의 의무도 생기고, 그 다음은 말씀이 늘 좋아서 궁금했다. 그래서 갔다.
예쁜 그 어머님의 사연도 대단하다. 나는 들으며 보통 분이 아니구나를 느꼈다. 다시 한번 생각하는것이지만, 세상에 그냥 교회 오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인생이 바뀔 수 밖에 없다. 아마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 곳에 모인 어머님들 모두가 각자의 어마어마한 사연이 있을텐데, 말씀만 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느낌이 들때가 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데 왜 난 발전이 없지? 왜 늘 똑같이 허우적거리지?바뀔 마음이 없는건가? 아님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는건 아닌가?
나의 문제는 은혜로 받은 구원을 행위에 얽매게 하고, 스스로를 압박하는 것에 있었다. 나의 구원도 내 스스로의 열심으로 소위 신앙의 성공에 이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늘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고 하고 결과를 내야하는.. 스스로를 지치게 만드는 신앙에 대한 쳇바퀴가 나를 옭아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틈타지 못하게 촘촘하게 생각하고 사는것이다. 이것은 나 뿐 아니라 가족이 있다면, 책임져야 할 누군가가 있다면, 자동적으로 이렇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긴장이 너무 된다고. 생각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술을 마시고.
하.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나의 모습인지.(그냥 내 편의대로 사는것이다)하고싶은건 다 하고 싶고, 고상한 이유를 대가며, 다 나름 이유가 있다고.
성경말씀이 나에게 주어진 건 어떻게 보면 감사할 일이다. 기준이 없고 모순적인 나의 삶이 그나마 한계와 질서와 규칙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인생의 질서와 규칙, 인간으로써 넘지 말아야할 선을 가르쳐 주셨다고 생각한다. 말씀을 지키는게 쉽지 않지만, (말씀에 대한 순종은 내가 할 수 있어서 한다기보다) 예수님을 정말 마음으로 믿는다면 결국에는 이루어 질 방향 같은거 아닌가 생각했다.
이중생활을 청산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남는건 하나님과 나. 둘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남탓. 상황탓. 환경탓은 먹히질 않을테니. 다시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상황과 환경 속에서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겁나고 늘 두렵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풍성해서, 이 쫄보같은 마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