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래요_23.7.13
동정 말고 위로를 건네고 싶었나 보다.
내가 피곤한 이유는 대중적으로는 둘째 아이가 5일 동안 열이 나서라고 말했지만, 정확히는 3일은 고열이 나서 잠을 못 잤고, 2일은 열이 떨어졌지만 내가 스트레스 해소한답시고 유튜브를 새벽 1시~2시까지 봐서 그렇다. (해소가 안되고 잠도 안 왔는 게 단점이다)
수요기도회가 있는 날이어서 어제는 학교에 갔었다. 수요기도회의 멤버가 이제는 뚜렷하게 정해져 가는 듯하다. 그런데 모임 중 나의 컨디션에 따라 말의 실수가 늘어나는 듯하다. 수요기도회가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모임이라, 조심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데 여기 모인 어머님들이 굉장하신 분들이 많다.(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기도모임 특성상 어머님들은 마음을 열고, 기도제목을 나누시는데, 기도제목이라는 게 뭘까? 자신의 고민과 어려움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러니 얼마나 각양각색의 사연이 넘쳐나겠는가. 사연 없는 집 없다고 정말 깊고도 깊은 우물 같은 사연이 너무 많다. 기도의 힘을 믿는다지만, 이게 기도로 될까? 싶은 내용도 사실 많다.
수요기도회를 다녀오면 드는 마음은, 내가 아이를 좋은 학교를 보내려고 이 학교를 선택해서 오고, 여기와 같은 가치관대로 키우기 위해 왔는데, 막상 넘쳐나는 학교의 기도제목과 각 가정의 기도제목을 듣고 있자면, 정말 살아있는 게 기적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다. 그럼에도 살았네 싶은..) 그 정도로 학교가 운영되는 게 신기하고, 각 가정의 어려움들을 듣다 보면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기도하시고 살아가시는 어머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보다 훨씬 나은 분들, 존경스러운 분들 같아 보인다.
사람이 살고 죽는 건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모르겠다. 나는 적어도 그렇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용기 있게 자신의 사연을 나눠주신 2명의 어머님이 계시다. 사실 나의 진짜 기도제목이 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깊게 나누질 못했다. 나의 진짜 기도제목. 사는 것을 누리고 기뻐하도록. 많은 어려움들이 있겠지만 용기를 가지고 담대히 살아가도록. 그런데 이 기도제목을 뒷받침할만한 서브 내용을 말해야 하는데, 굳이 깊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분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나도 나 자신이 이해가 어려워서다.
2명의 어머님이 마음에 남았다. 개인적으로 연락처도 받고 뭔가 제스처를 취하고 싶었다. 살갑게 굴고 싶었달까? 이유는 사연을 듣는데, 굉장히 와닿아서였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나의 경우는 가장 큰 위로가 <나도 그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저도 그래요>
가정을 이루고, 양육을 하면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날마다 느낄 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특히, 관계에 많은 의미를 두고 그 안에서 행복감을 누리는 사람은 그런 관계 속에서의 어려움을 날마다 부딪힐 때마다 낙담이 심각해진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보니,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관계에서의 주고받는 사랑과 소통, 용서와 이해 등을 소중히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그게 막힐 때 다들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런 기도제목을 들을 때, 뭐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냥 듣고만 있었고, 마음에 남았다. 계속 그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저도 그래요>
카톡이나 보내볼까? 하다가 만다. 동정이 아니라 위로인데, 동정처럼 여겨질까 봐 그냥 말았다. 조금 더 많이 위로하면, 상대가 불쌍한 처지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게 고마울까? 동정 말고 담담한 위로가 좋은데, 그 위로가 참 어렵다.
나는 그런 위로를 받고 싶고, 그런 위로를 하고 싶다. 윗사람이 아랫사람 보듯, 나랑 관계없으니 불쌍해서 하는 말 말고, 그냥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 마냥, 그리고 별일 아닌 것 마냥, 당신의 기대가 조금도 헛되지 않다는 듯,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그냥 그렇게 위로하고 싶었다.